흉악범죄에 '의경 부활' 검토…현장은 기대, 전문가는 우려
인력 부족한 일선 경찰은 환영
전문가들 "근본 문제 해결해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부터 등산로 성폭행 사건까지 연이은 흉악범죄에 정부가 의무경찰(의경) 부활 카드를 꺼냈다. 일선 경찰들은 반기지만 전문가들은 치안공백의 근원적 해법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상동기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치안업무를 경찰 업무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경찰 조직을 재편해 치안 역량을 보강하겠다. 범죄예방 역량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의무경찰제의 재도입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경 제도는 '대간첩작전'을 위해 만든 전투경찰대를 모태로 한다.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2년 12월 기존 전투경찰을 작전전경과 의경으로 분리했다. 의경은 경찰청 소속으로 복무 기간 동안 경찰의 치안 업무를 보조했다. 2013년 전경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면서 전경 업무도 수행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경찰 인력을 충원하겠다며 '의무경찰 단계적 감축 및 경찰 인력 증원 방안'을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매년 20%씩 의경 인원이 줄어들었으며 지난 4월 마지막 기수가 전역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군 병력 자원이 점차 감소하는 것도 폐지 이유 중 하나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일련의 범죄상황, 테러나 사회적 재난 상황까지도 신속 대응할 수 있는, 24시간 상주하는 자원이 필요하다"며 "신속대응팀 경력 3500여 명, 주요 대도시 거점에 투입되는, 기존의 방범순찰대에 가까운 인력 4000여 명 정도로 7500~8000명의 인력을 순차적으로 채용해서 운영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14만 명 경찰 인력 중 실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은 일시점 3만명 안팎 정도로 치안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어 의경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병력 자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와 협의를 거쳐 일부를 넘겨받는 형태로 7~9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신속대응팀과 방범순찰대로 나누고 집회시위 현장엔 배치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일선에선 환영 분위기다. 의경 업무를 경찰기동대가 대신하고 있지만 공백을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경찰 간부는 "현장에서 의경이 도움이 많이 된다. 이번 등산로 사건도 인력이 충분하다면 순찰을 할 수 있었다.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경을 없앨 때도 불만이 많았다. 인원이 늘어나도 기동대로 다 투입되니까 몇만 명씩 뽑았다는 소리는 들리지만, 피부에 와닿는 게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경 재도입이 치안공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갑자기 경찰 인력을 늘릴 수 없으니까 의경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인데 경찰과 의경에게 주어진 권한과 임무는 다르다"며 "한국의 경찰 인력은 부족하지 않은데 문제는 인력 운영의 효율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장 근무자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년6개월 복무하는 의경에게 전문 훈련을 거친 경찰만큼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로 입직하면 34주간 훈련을 받는다. 관련 교육을 2주 정도밖에 받지 않은 의경에게 치안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의경이 없어졌다고 치안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의경을 없앤 이유는 국민들 입장에서 제대로 된 치안서비스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기간이 일반 경찰과 17배 차이인데 감당할 수 없다. 흉기를 든 흉악범이 다닌다면 의경이 어떻게 제압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군인인 의경을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들이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긴 쉽지 않다. 경찰을 더 투입하고, 순찰 전문 인력을 더 많이 늘려야 한다. 첨단장비나 CCTV 기술 등을 도입하는 등 치안서비스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와의 협의도 난관이 될 전망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저출산으로 군 병력 자원도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병력 50만명을 유지해야 하는데 8000명이라는 숫자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호 교수도 "전의경 제도를 폐지한 배경에는 국방 인력도 부족하다는 것도 있었다. 인력을 어디서 보완할 수 있을지,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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