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윤석열의 ‘독단’ 혹은 ‘결단’
소신과 결단 對 일방적… 대통령 보는 상반된 시각 國政 흐름 따라 계속 변해
최종 평가 역사가 내릴 것
1952년 12월 이승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만남이 역사상 첫 한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돼 있다. 6·25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 현장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두 사람이 제대로 격식을 갖춘 회담을 가진 것은 2년 후인 1954년 7월 미국에서였다. 회담 분위기는 사뭇 껄끄러웠다고 한다. 한일 관계에 대한 두 정상의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전체주의 세력의 확장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젠하워는 이 목표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함께 뭉치기를 바랐는데 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이 한일 간의 역사적 갈등 때문에 속앓이를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초청해 개최한 3국 정상회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외교적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고 평가했다. 아이젠하워 이후 70년 동안 미국이 풀지 못했던 숙제가 해결됐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칼럼은 “한·미·일 정상회담은 2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적 고충을 넘어선 용기 있는 한국 대통령과 실용적인 일본 총리가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썼다. 어느 쪽 지도자에게 더 방점이 찍혔는지는 ‘용기’와 ‘실용’이라는 단어 선택이 짐작하게 해준다.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을 때 정권 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삼전도의 굴욕에 버금간다”고 비난했다.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60%, 찬성이 30%였다. 윤 대통령은 “여론은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밀어붙였다.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져도 장기적인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찬성보다 반대가 두 배인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모험이자 도박이다. 그 부담을 견뎌낸 덕분에 성사시킨 한·미·일 세 나라의 협력 체제에 대해 ‘아시아판 준(準)나토’ 결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근본적인 국제질서 변환에 한국이 당사자로 참가하는 차원을 넘어 촉매 역할까지 했다.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잡히면 어떻게든 한국에도 들르게 만들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구차한 처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코리아 리서치등 4개 언론기관이 공동 실시해 지난 17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이유로 가장 높은 것은 ‘결단력’(18%)이었다. 반면 부정평가 이유로는 ‘독단적이고 일방적’(16%)이 둘째로 높았다. 여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돌진하는 대통령 스타일이 지지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반대 세력으로부터 비판받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정책 내용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대통령이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자 역시 그 부류에 속하는 편이다. 다만 이번 캠프 데이비드의 성과를 지켜보면서 ‘인간 윤석열’의 장점과 단점을 따로 분리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되새겨보게 됐다. 인생 최고의 승부에서 성공한 성인 남자가 남의 충고를 듣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기도 하다.
“100년 전 일로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통령 인터뷰가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야당은 “일본 총리가 한 말인 줄 알았다”고 비꼬았다. 국정 지지율에 분명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국제사회에선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한일 관계를 과거사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는 쪽이었다. 그래서 주춤거리던 일본을 압박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윤석열의 결단과 뚝심이라는 장점을 뒤집어 보면 독단과 일방적이라는 단점으로 비춰질 수 있다. 검찰총장 때 책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정권에 할 말을 하던 모습은 용기와 담대함이었는데, 대통령의 비슷한 행동은 거칠고 무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안팎의 모습이 모두 윤석열이고 그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강제 징용 해법과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인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일방적인 독단으로 비판받았던 선택이 현재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재평가받는 상황이다. 물론 ‘독단’이냐 ‘결단’이냐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역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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