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 조선인이 방화” 가짜 뉴스에 가담한 日대문호 아쿠타가와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는 1923년 9월 일어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화재를 냈다’는 유언비어를 믿었다. 1927년 35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쿠타가와는 당시 반(反)군부 사상을 피력한 일본 대표 지성(知性)이었다. 주간아사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아쿠타가와조차도 아무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아쿠타가와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다음 달에 쓴 에세이 ‘다이쇼 12년(1923년) 9월 1일의 대지진에 대하여’는 그가 조선인과 관련한 유언비어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드러낸다. 소설가 기쿠치 간(菊池寛·1888~1948)과 대화한 내용을 다룬 글에서 아쿠타가와는 자신이 “(관동대지진 때) 큰불의 원인은 후테이센진(不逞鮮人·일본의 지배를 따르지 않는 불온한 조선인이란 의미)의 방화라고 한다. 볼셰비키(극단적 공산주의)의 스파이라고 한다”고 말했다가 기쿠치에게서 “거짓말이다”라고 일갈을 당했다고 썼다. 아쿠타가와는 이어 “야만적인 기쿠치는 (내 말을) 믿지도 않지만 그런 흉내도 내지 않는다. 그건 완전히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방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선량한 시민인 동시에 용감한 자경단의 일원인 나는 기쿠치를 애석해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명시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조선인과 관련한 유언비어를 ‘믿는 흉내’라도 내야 선량한 시민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위 글에도 썼듯이, 아쿠타가와는 관동대지진 당시 자경단 활동에 참가했다. 다만 자경단 활동이 조선인 학살 관여를 뜻하지는 않는다. 주간아사히는 지난해 9월 발행한 ‘문호들의 관동대지진’ 기사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쿠치 간, 나가이 가후(永井荷風·1879~1959) 등 많은 문호가 야경(夜警) 활동을 했다”고 썼다. 대지진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마을을 지키는 활동에 참가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자경단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했고 문호들조차 조선인 폭동설을 어느 정도 믿었다고 주간아사히는 전했다.
아쿠타가와는 후일 ‘어느 자경단원의 말’이라는 글에 “우리는 서로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하물며 살육을 즐기다니, 상대를 목 졸라 죽이는 게 토론에서 이기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라고 썼다. 조선인 학살에 가담한 자경단원들을 비판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부 평론가는 이 자경단원들의 행위에 공감하고 옹호하는 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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