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정원에 사계절이 오롯이
20년간 정원 손수 가꾼 안병옥 씨… 나무 50여 종과 식물 1000여 그루
자신만의 감각으로 조화롭게 배치… “자연 돌보며 자연스레 겸손 배워”
전남 장성군 진원면 율곡마을에 있는 개인 정원 ‘초원’의 풍경이다. 율곡마을은 광주와 장성군의 경계인 못재 바로 아래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초원’은 소나무 등 50여 종의 수목과 1000여 그루의 식물로 꾸며진 말 그대로 초원의 푸름을 즐길 수 있는 정원이다. 유선형의 관람 동선 기법을 도입하고 키 큰 교목과 키 작은 화초류를 입체적으로 배치해 편안함을 느끼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 씨는 사진에서 배운 구도와 색채, 대칭, 여백 등의 기법과 감각을 정원에서 펼쳐 보였다. 이를테면 나무 한 그루를 열린 공간 속에 고립시킴으로써 크게 보이게 하거나 작은 관목들을 곁에 두어 대비시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사진을 좋아했던 안 씨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20년 넘게 다니던 전매청 광주연초제조창(현 KT&G 광주공장)을 1994년 명예퇴직했다. 광주대 사진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이공대 디자인학부에서 ‘포토미디어’를 10년 넘게 가르쳤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안 씨는 광주에서 고향을 자주 오가면서 지금의 집터를 눈여겨봤다고 한다. 2003년 집을 살 당시 1990㎡(약 600평)의 터에는 감나무 한 그루밖에 없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던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소나무를 심었다. 아래에는 아내 이름으로 넓은 바위를 놓았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남매처럼 서로 변치 말고 살자고 다짐하면서 정원을 꾸민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정원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나무는 아들 내외 결혼을 기념해 심은 수양백매화와 아내의 칠순 때 심은 운용매화다. 장미와 수국, 철쭉과 벚꽃이 봄과 여름의 갈림길을 안내해준다. 바람결에 은목서 향기가 느껴질 때면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다. 정원이 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겨울은 고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정원의 주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안 씨는 정원을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삶을 고민하는 공간으로 여긴다. 주변에 흔한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도 생명을 불어넣고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 작품이 된다고 믿는다.
그는 “정원을 가꾸는 고단함보다 즐거움이 더 크다”고 했다. 무얼 심을까 상상하는 게 즐겁고 심어놓은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낙이라고 했다. 흙을 일구며 땀 흘릴 수 있어서 좋고 식물과 자연이 뭔가를 채워주는 충만감은 덤으로 따라왔다.
지혜도 필요하다고 했다. 안 씨는 “꽃은 1년짜리 보통예금이고 나무는 정기적금”이라고 말했다. 꽃은 1년이 지나면 다시 심어야 하고 나무는 해마다 불어나는 이자처럼 무럭무럭 크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높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신원 조회’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부지방에서 잘 크는 나무를 남부지방에 심을 때는 몸살을 심하게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백과 여백의 의미도 강조했다. 정원은 공간의 조화가 핵심이기 때문에 ‘공백은 줄이고 여백은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정원은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울타리가 없고 문턱도 낮다. 누가 찾아와도 친절하게 맞이하며 안내해준다. “정원을 가꾸고 거니는 작은 일상 하나가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안 씨는 “정원에는 아주 오래된 돌도 있고 우리보다 훨씬 먼저 태어나 뿌리를 내린 나무도 있다”며 “이런 자연을 접하면서 저절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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