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95]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지난 8일은 ‘무궁화의 날’이었다. 정부 공식 기념일은 아니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궁화를 기념하기 위해 민간 단체에서 2007년에 제정하였다.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 모양이 되기에 시공간이 끝이 없다는 뜻의 ‘무궁(無窮)’과 연결하여 이날을 무궁화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많은 땅이라는 뜻의 ‘근역(槿域)’ 또는 ‘근화향(槿花鄕)’으로 지칭한 것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에 이미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가 등장하니 그 연원이 깊다.
서양의 신식 음악인 창가가 유입되던 1890년대에 무궁화 관련 창가도 등장한다.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 자에는 ‘조선 개국 505년 기원절’ 기념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노래한 ‘무궁화 노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우리 임군 황천이 도우사 임군과 백성이 한 가지로 만만세를 길게 하여 태평 독립하여 보세”의 노랫말은 윤치호가 지은 것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현행 ‘애국가’의 후렴은 1910년대 창가에서 종종 보인다. 1910년 손봉호 편찬 창가집의 ‘애국가’, 같은 해 발간한 것으로 추정하는 손승용의 ‘창가집’ 수록 ‘무궁화가1′과 ‘무궁화가2′에 이 후렴이 나타난다. 또한 1914년 만주 광성학교에서 발행한 ‘최신창가집’이나 1916년 호놀룰루의 ‘애국창가’에도 같은 후렴을 사용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대부터 무궁화는 애국과 독립의 표상으로 노랫말에 쓰였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한 무궁화는 이후에도 거듭 노래에서 활용되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의 ‘우리나라 꽃’과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의 ‘무궁화 행진곡’은 대표적인 무궁화 관련 동요다. “꽃 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로 시작하는 ‘꽃 중의 꽃’은 1957년 당시 공보실에서 기획한 새 노래 보급 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6·25전쟁 당시 종군 극작가단에서 활동하던 황문평이 1951년에 작곡한 노래가 뒤늦게 세상 빛을 본 셈이다.
산림청의 ‘2022 무궁화 국민인식도 조사’에 의하면 무궁화는 꽃나무 선호도 8위에 그칠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선호도가 낮은 이유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작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가로수 중 벚꽃 종류가 14.9%나 차지한 것과 달리 무궁화는 겨우 4.7%에 머물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무궁화가 많아 그 옛날 무궁화 나라로 불리던 곳에 이 꽃이 자꾸 줄어드니 안타깝다. 그런데도 묵묵히 제 일 하듯 여기저기 무궁화가 한창이니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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