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아무도 잼버리 근무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망할 것 같더라.”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끝나갈 즈음,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친구는 이렇게 평했다. 잼버리 이전 국제 행사에서 우리 행정이 별 문제 없이 작동해왔던 것이 신기한 일이라면서 말이다. 실제 대한민국 행정은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십수년 동안 계속 망가져 오기만 한 듯하다. 철근이 빠진 상태로 지어진 아파트처럼, 국가 행정의 뼈대 역할을 하는 업무 기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먹구구 식으로, 정치권력의 관심에 맞게만 운영된다. 필자가 공무원을 그만둔 후 4년이 지났고 정권 역시 새로이 바뀌었지만, 전문성 없이 한 순간만을 모면하려고 하는 파행적 업무 관행은 여전하다고 한다.
잼버리도 그러했다. 여러 언론들에서 예산 낭비를 지적하지만, 예산 낭비 이전에 조직 및 인사 파행이 먼저 있었다. 여성가족부 인가 조직이었던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전라북도 부안에 위치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근무하던 여성가족부 공무원 중 임시 조직인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파견을 나가고 싶어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라북도청 공무원들조차도 부안에 위치한 조직위에 파견 나가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업무에 대한 보상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여가부 공무원이건 전라북도청 공무원이건 잼버리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것은 격오지 근무를 의미하는 ‘냉탕’ 근무로 여겼다고 한다.
파견 근무자 선정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능력 있는 공무원들은 잼버리 조직위에 파견 나가는 것을 피했다. 조직위에 파견 나간 공무원들은 담당한 잼버리 업무보다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기 위해 본부 인사과에 연락하는 일’을 우선시했다고 한다. 잼버리 조직위에서 2~3년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근무한 공무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1년 단위로, 아니 1년도 채우지 않고 담당 공무원들이 바뀌어 나갔고 그 속에서 잼버리 준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조직위원회와 전라북도청의 업무 분장도 명확하게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해를 모면하는 식의 행정이 지속되었다. 2017년 유치한 잼버리 메인 센터 건립 입찰 공고를 2022년에서야 내고, 입찰 공고를 내면서도 잼버리 행사가 끝난 이후 센터를 완공하는 것으로 계획했던 것에는 이러한 행정적 파행이 있었다.
1년 이하의 순환 보직은 자연스럽게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그에 따른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새로 업무를 담당하게 된 공무원은 잼버리 현장을 파악하는 데 당연히 상당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그것을 대체하려 수억원 단위의 돈을 들여, 세금을 낭비해 가며 잼버리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수립하는 외부 용역을 진행했다. 정상적인 행정 시스템하에서는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담당 공무원의 역할이다. 다른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일이 그것이다. 해외 출장은 어떠한가. 애당초 출장을 나가는 공무원은 다음 연도에 잼버리와 관련된 업무를 하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잼버리를 명목으로 출장을 나가게 한 것은 세금을 들여 공무원에게 여행을 시켜준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 공무원 사회에는 사무관 승진 때나 은퇴 전에 외유성 해외 출장이 여전히 관행화되어 있다. 잼버리 관련 일을 하지도 않을 사람들에 대한 외유성 출장에 우리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어떠한 업무에 우리 세금은 그렇게 낭비되고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으로 우리 행정의 민낯이 여러 번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 사건들이 행정 관행의 개선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저 정치 쟁점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라도 행정이 바뀌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행정이 더 망가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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