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어린이집에서도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놀아요”
발달단계 맞춘 놀이식 교육… 송파구 117곳서 무료 운영
초등생엔 ‘원어민 캠프’ 제공… 영어 사교육 부담 크게 덜어
16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국공립 천마어린이집. 미국인 원어민 교사 패트릭 스미스 씨(29)가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6세 ‘열매반’ 아이들 18명이 저마다 손을 들고 기린, 사자, 코끼리 등을 영어로 외쳤다. 스미스 씨가 몸짓으로 동물 흉내를 내자 원생들은 자연스럽게 동물의 몸동작을 영어로 말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단어를 크게 외쳤다. 답이 틀리면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며 따라 발음했다. 활동이 끝난 뒤에는 동물 그림 퀴즈를 통해 이날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박시은 양(6)은 “선생님과 함께 인사하고 놀이하며 영어를 알게 되니까 더 좋다”고 했다.
● 공교육-사교육 영어 격차 해소
천마어린이집에서는 올해부터 ‘원어민 영어 교실’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료는 전액 무료다. 구 차원에서 영어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어 알파벳을 배운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취학 전 영어 사교육을 받기 때문에 갈수록 영어 교육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송파구는 관내 국공립·민간 어린이집 78곳과 유치원 39곳 등 총 117곳에서 초교 입학 전 영어를 가르친다. 수업 시간은 주 1회 30분씩이다. 구는 올해 초교 입학 전 연령인 6세 원생을 시작으로 5세, 4세까지 단계적으로 영어 공교육 대상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업 예산은 한 해 10억 원이다. 천마어린이집 원장은 “값비싼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못해 아쉬워하거나, 자녀에게 미안해하던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사교육이 성행하면서 전국에 영어 유치원이 847곳이나 생겨났다. 그중 114곳이 송파구를 비롯한 일명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구 관계자는 “송파구 관내에서도 마천동 주택가에는 가깝게 위치한 영어 유치원이 거의 없다”고 했다. 같은 구 안에서도 영어 사교육 시설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어 쉽게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영어 유치원이 집 가까이에 있는 경우라도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되는 영어 유치원 교습비에 부담을 느끼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한 학부모는 “공교육에서 유아 영어 교육을 지원해 주니 사교육 부담을 덜 수 있고, 어린이집 안에서 신분이 보장된 원어민 교사들이 가르치니 더 안심이 된다”고 했다.
● 놀이식 수업에 장애 학생도 열심
‘원어민 영어 교실’ 수업은 6세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놀이식으로 이뤄진다. 읽기, 쓰기 등 학습 위주 수업을 강조하는 영어 유치원과 대비되는 점이다. 놀이와 만들기 등 체험 위주이다 보니 통합학급인 천마어린이집 열매반 원생 모두가 수업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열매반 담임교사인 김혜림 씨(31)는 “확실히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면서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친숙도나 이해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며 “중증자폐와 지적장애가 있는 원아들도 집중을 잘한다”고 설명했다. 수업이 진행될 때 담임 교사들도 함께 참여해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가는 모습을 살핀다.
원어민 교사는 구에서 직접 선정한 교육업체에서 선발한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스미스 씨는 “학원에서는 책 읽기 위주의 수업을 주로 시켰다”며 “지금은 교사로서 좀 더 자율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수업 방식을 찾아 가르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스미스 씨는 지난해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유명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모든 수업에는 원어민 교사 1명과 보조 교사 1명이 함께 배치된다. 보조 교사는 송파구에 거주하는 경력 단절 여성 가운데 영어 회화 실력을 갖춘 이들로 선발한다. 원어민 교사의 설명을 아이들이 놓치거나 하면 보조 교사가 개입해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영어교육 공백’은 초1, 초2 때도 발생한다. 구는 이 점을 감안해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도 방학 기간 원어민 영어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영어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공교육에서는 초3이 되기 전까지 영어를 접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캠프는 방학 때만 운영되는 대신 주 3회씩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7월 17일부터 9월 8일까지 8주간 진행된다. 수강료는 8주에 6만 원으로 사교육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한 반 정원은 20명으로 총 4개 반이 운영되며, 영어 실력에 따라 초급과 중급 2개 반으로 나뉜다. 수업은 미술 활동, ‘세계 문화의 날’ ‘마켓데이’ 같은 체험 활동 등 6세 반과 같이 놀이 위주로 진행된다. 차이점은 학습량의 범위가 6세 반에 비해 넓어지고, 플래시 카드를 이용한 단어 암기 같은 학습이 결합된다는 것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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