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 가면…곶감만 떠오르나요, 낙동강과 자전거의 고장입니다만
- 경상도의 ‘상’ 딸만큼 유서 깊은 도시
- 낙동강 조망 일번지로 꼽히는 경천대
- 황금들판 넘실댈 가을 기대되는 경치
-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프로그램 훌륭
- 전국 동호인들의 성지 자전거박물관
- 일제강점기 통쾌함 선사한 엄복동 사연
- AG금메달리스트 나아름 자전거도 전시
경천대(擎天臺)에 오르자 동행한 일행은 아!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여기서 보는 낙동강 경치가 참 좋군요. 강 건너 저 푸른 들녘엔 벼가 잘 자라네요. 오션 뷰 못지않게 ‘논 뷰’도 참 아름답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곧 저 푸른 들녘도 황금 들판이 되겠지요.” 8월 하순의 해는 남은 모든 여름의 빛과 양(陽)의 기운을 들판에서 자라는 벼를 향해 쏟아내겠다고 작정한 듯, 미사일처럼 논으로 내리꽂혀 이불처럼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늦여름 상주 여행이었다.
일행이 말한 ‘황금 들판’이 뇌리에 남았다. 곧 9월이 오고 가을이 스며들면 저 너른 상주 벌판은 벼가 익어 황금빛 물결로 파도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벼가 어떻게 자라서 쌀이 되는지 잘 모른다던데. 곧 다가올 가을의 여행지로도 상주는 멋지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상주박물관·농경문화관
지난 18일 경북 상주 땅에 들어서자마자 향한 곳은 상주박물관이었다. 윤호필 상주박물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현재 한국청동기학회장인 윤 관장은 중소 도시 공공박물관으로 분류되는 상주박물관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그 방식은 기획전시, 작은 체험형 전시, 책 발간, 인문 프로그램, 기증 활성화와 기증자 예우 등 다양하다. 그는 상주자전거박물관장도 맡고 있다.
고려 시대인 1314년 조정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따 경상도(慶尙道)라는 지역 이름을 만든다. 그렇다. 지금의 경상남북도 명칭의 한 축은 상주에서 왔다. 상주가 오랜 세월 얼마나 중요한 고을이었는지, 얼마큼 유서 깊은 고장인지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등 옛 기록만 살펴도 신라·백제·고구려가 상주 땅에서 자주 쟁패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윤 관장은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 상주에 있다”고 설명하며 관련 전시물을 소개했다. 상주의 낙동면 신상리 유적과 청리 유적인데, 신상리 유적은 연대가 15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이야기는 시작일 뿐이었다. 상주 고을은 엄청난 이야기 자원을 품고 있음을 박물관 곳곳에서 확인했다. 그 중심에 농경 문화가 있다. “조선 시대 남쪽 지역에서 한양으로 곡식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조운선(범선)은 상주까지 왔습니다. 큰 배가 올라올 수 있는 마지막 큰 고을이었기 때문이죠.” 상주에서 짐을 내려 육로로 간 뒤 다시 남한강 수로를 활용하는 등의 방식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서쪽은 소백산맥, 동쪽은 낙동강을 낀 선명한 서고동저 지형인 상주는 낙동강 주위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러니 낙동강 조망 일번지로 꼽히는 경천대가 상주에 있고, 상주를 일컬어 쌀·누에·(흰색 가루가 생기는) 곶감이 상징하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하며, 유림과 문중이 번성한 고장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자전거 도시가 된 사연 등을 꽤 이해할 수 있었다. 상주박물관 별도 건물에 자리한 농경문화관도 예상했던 것보다 다채롭고 매력이 있었다.
▮경천대
경천대의 ‘경’을 찾아보니 ‘들다, 들어올리다, 받들다, 떠받들다’는 뜻의 擎(경)이다. 조선 시대 병자호란 시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중시했다는 채득기 선생의 사연 등이 안내판에 적혀 있는데, 하늘을 받드는 대(臺)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경천대는 상주에서 가장 유명한 경승지로 꼽힌다. 여행 중 만난 상주 사람은 거의 경천대를 추천했다. 경천대 입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입장한 뒤 무우정(舞雩亭)과 경천대까지 돌아보니, 과연 좋았다. 우(雩) 자를 찾아보니, 기우제라는 뜻으로 나온다.
전망이 뚫리는 곳은 네 군데 정도였다. 무우정과 경천대, 그리고 포토존과 경천전망대였다. 이곳에서는 상주 벌판을 적시는 낙동강이 휘돌아 가며 만든 물돌이동 지형이 잘 보였다. 푸르디 푸른 늦여름의 벌판 광경이 멋졌는데, 가을에 다시 오면 황홀한 황금 들녘을 잘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천대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해 정주행하듯 길 따라 걷다 보니, 무지산(159m) 꼭대기에 세운 경천전망대가 꽤 높은 데 있는 점이 ‘도전’이었다. 무우정에서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가팔랐다.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경천전망대에 가서야 또 다른 경로가 있음을 발견했다. 상주박물관에서 조금 더 편한 숲길을 따라 400m만 오면 경천전망대에 곧장 닿는다는 사실을 표지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경천대 주차장까지 오지 않고, 상주박물관에서 곧장 경천대로 오면 길이 더 편할 듯했다.
▮상주자전거박물관·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 가에 자리한 상주자전거박물관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전거 박물관’이라는 주제가 워낙 드물기도 하고, 왜 상주는 ‘자전거’일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안내인이 “부산서 오셨다니 반갑다. 자전거 동호인들은 부산에서 출발해 자전거도로를 따라 약 300㎞를 달려 하루 만에 이곳 상주자전거박물관까지 오곤 한다”고 들려줬다. 놀라고 말았다. 부산서 하루 만에 300㎞? 건강한 철인이 참 많구나 싶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울분을 달래주고 통쾌함을 안긴 자전거 경주왕 엄복동, 그리고 박상현의 사연부터 2018년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땄던 상주시청 소속 나아름 선수의 자전거까지, 상주가 왜 일제강점기부터 자전거 도시로 떠올랐는지, 자전거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 반가웠다.
마지막 일정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으로 잡았다. ‘국립’이라는 수식어에서 신뢰감과 권위를 느꼈고, ‘낙동강생물자원’이라는 표현에 호기심이 일었다. 가 보니 역시나 국립답게 훌륭했다. 다만, ‘낙동강생물자원’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지구상 전 세계 생물자원을 전시하고,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물론 상주를 비롯한 한반도의 동식물과 생태에 관한 전시도 포함된다. 생태·기후 위기가 온 인류에게 재난으로 닥친 시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흥미롭게 생명에 관한 존중의 마음을 배우는 ‘선진국형’ 공간으로 다가왔다.
상주박물관·농경문화관·경천대·상주자전거박물관·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낙동강을 끼고 있으며 차로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상주는 육우를 많이 기르기로 소문난 고장이라 소고기가 유명하다. 상주시내 ‘너구리 식당’에서 소고기를 먹어 보며 그 명성을 실감했다. 박물관과 경천대는 무료 입장.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입장료는 어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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