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급증 주범?… ‘50년만기 주담대’ 줄줄이 중단

김지섭 기자 2023. 8.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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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엄포에 은행들 몸사려

올해 출시돼 집을 사려는 이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은행들이 잇따라 판매 중단을 선언하거나 가입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최근 가계빚 급증세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로 50년 만기 대출을 지목하자 은행들이 서둘러 철수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계빚 급증의 주된 배경은 주택담보대출 만기가 늘어나서라기 보다는 부동산 시장 회복 조짐인데 당국이 엉뚱한 타깃을 잡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50년 만기 대출, 줄줄이 판매 중단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경남은행이 오는 28일부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판매를 잠정 중단할 예정이다. 이달 초 대출 만기를 기존 30년·40년에서 50년으로 늘린 지 3주도 안 돼 내린 결정이다. BNK경남은행 관계자는 “해당 상품에 우려가 있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지를 다시 논의해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NH농협은행도 지난달 5일 출시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판매를 2조원 한도가 채워질 것으로 보이는 이달 말 종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은행들은 아직 판매를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상품 가입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올 1월 50년 만기 상품을 은행권 처음으로 출시한 Sh수협은행은 이달 중 가입 연령을 ‘만 34세 이하’로 제한할 예정이다. 지난 6월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50년으로 늘린 대구은행도 연령 제한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부산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이달 중 50년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잠정 보류했다. 이밖에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도 판매를 잠정 중단하거나 가입 요건을 강화하는 것 등을 검토하고 있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앞다퉈 50년으로 늘리기 바빴던 은행들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로 바뀐 것은 금융 당국 엄포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금융위원회 주재로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DSR은 연소득에서 모든 대출금의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의 비율을 가리킨다. 현재 DSR 40%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만기가 늘어나면 연간 갚아야 하는 원리금 규모가 줄어들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거나 은행에 매달 갚아야 할 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가계빚 급증 요인, 부동산 시장 전체를 봐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자 인터넷상에는 ‘절판(絶版) 마케팅’을 하는 대출 모집인들의 글도 눈에 띄고 있다. “사라지기 전에 막차를 타야 한다”거나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라”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의 감시 강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행 창구에는 가입을 문의하는 고객도 급증하고 있다.

일각에선 금융 당국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계빚 급증의 배경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보다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선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가 5~6월 2개월 연속 상승하다 지난달 0.01%포인트 하락한 3.69%를 기록하는 등 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진 것도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집중적으로 출시되기 전인 지난 2분기(4~6월) 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14조1000억원으로 이미 1분기 증가액(4조5000억원)의 3배를 넘어섰다.

상품 가입 연령을 만 34세 이하로 한정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출을 받고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되는 3년 뒤 집을 팔거나 더 낮은 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단순 ‘연령 제한’을 두는 것은 역차별 논란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상승해 평생 집을 못 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실수요자들에게 있는 것 같다”며 “가계빚 급증세를 막으려면 부동산 시장 상황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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