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지역소멸 해결의 열쇠, '지역과학기술혁신법'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1974년 195억4000만달러에서 2022년 1조6643억3000만달러로 85배 증가했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중앙정부 주도의 선택과 집중으로 필요한 산업에 적절한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며 기업들이 빨리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짐에 따라 중앙정부가 모든 산업과 지역의 현안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해 실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현실이다.
여기에 지역의 인구감소에 따른 지역소멸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지역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지방정부 자체의 주도적 역할과 정책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인구가 소멸하리라 예상되는 지역이 매년 늘고 있는데 수도권과 광역시 일부 지역도 포함됐다.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한 지역의 석박사 비중은 2017년 41.3%에서 2021년 40.1%로 하락했다. 대학생 수가 현재 대비 22.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 무렵에는 지역의 석박사 수가 더욱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수도권은 인구집중에 따른 사회적 혼잡비용이 증가하고 지역은 유휴자원과 공공행정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악순환이 심화하면서 우수인재의 지역이탈도 가속화한다. 지역은 혁신을 위한 동력뿐만 아니라 잠재력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지역의 경쟁력 상실은 우리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일찌감치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차원의 투자를 강화한다. 지역 단위의 혁신을 촉발하는 구조를 만들고 중앙정부가 투자로 뒷받침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2022년 미국은 반도체와 전략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및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키면서 지역 중심의 혁신역량 강화내용을 포함했다. 소외된 지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방정부를 포함한 혁신주체들이 참여하는 지역기술혁신 허브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소외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지역 주도로 첨단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소외된 지역에서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원천기술을 연구할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기술사업화를 가속화할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환을 추구한다. 2002년 중국은 '과학기술진보법'을 개정해 지역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된 장을 추가했다. 현급 이상의 지방 인민정부가 과학기술 연구와 응용을 지원토록 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하며 지역혁신 플랫폼을 구축해 과학기술 성과의 지역전환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토대로 중국 과학기술부와 교육부는 지방정부 및 과학기술 선도기업이 참여하는 수준 높은 연구형 대학인 '미래산업과학기술원'을 설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역 중심의 과학기술 혁신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6월 정부와 여당 주도로 '지역과학기술혁신법'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지방정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환경과 여건에 맞는 과학기술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길이 아닌 지방정부 주도로 혁신경로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지방과학기술입국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이후 지방분권의 시대가 열렸지만 중앙정부 중심의 국가과학기술 혁신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지역이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뒷받침하는 지역과학기술혁신법은 과학기술 혁신으로 지역이 되살아나는 시발점이자 지역이 자발적인 혁신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자생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역과학기술혁신법이 신속히 제정돼 각 지역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미래 과학기술 투자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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