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개근이 천대받는 사회

조병욱 2023. 8. 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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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만 더 주시죠. 자주 안 나오시니까."

이 단어의 존재 여부를 두고 엇갈린 의견이 있지만 해외여행 등으로 개근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형성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는 한때 개근을 성실성의 지표로 삼았던 시기가 있었다.

개근 거지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게 된 것도 어쩌면 국회의원들의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인식이 시나브로 사회 전반에 스며든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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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 지표 옛말… 과정보다 결과 중시의 그림자

“2분만 더 주시죠. 자주 안 나오시니까.”

지난 21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분위기는 자못 삼엄했다. 올여름 수해로 인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해병대원의 사망 사고와 이후 수사를 두고 불거진 논란을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상임위에 잘 출석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회의에 나와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이 대표의 질의 순서 도중 위원별로 주어지는 7분의 질의시간이 끝나고 마이크의 빨간불이 꺼졌을 때의 일이다.

통상 의원들은 마이크가 꺼지면 하고 있던 질문을 마무리하고, 상임위 위원장은 그 시간이 길게 이어질 경우 이를 제지한다. 또는 질의하던 위원이 상임위원장을 바라보며 1, 2분의 추가시간을 요청한다.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게 보통이다. 이 대표는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계속 질의를 이어갔다. 그러자 한 의원이 대신 나서 2분의 추가시간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바로 “자주 안 나오시니까”였다. 그 목소리 뒤로 약간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이 대표는 그 말을 듣고 멋쩍은 듯 손을 들어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조금 더 말을 이어간 뒤 질의를 마쳤다.
조병욱 정치부 기자
법률소비자연맹이 지난 9일 발표한 21대 국회의원의 2020년 5월30일부터 올해 5월29일까지 3년간 상임위 출석률 조사결과, 지난해 6·1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 대표의 출석률은 53.85%다. 전체 의원 평균 출석률은 81.65%, 초선 의원 평균 91.28%, 민주당 평균 92.92%, 같은 시기 입성한 다른 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90%를 웃도는 출석률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이 대표는 본회의 재석률도 59.85%로 재보궐로 입성한 의원 7명 중 가장 낮다.

최근 언론 지면에 나온 ‘개근 거지’라는 신조어가 교단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가족 해외여행·체험학습 등으로 출석 인정이 되는 결석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 가운데 가정 형편상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실에서 놀리기 위해 나온 조어라는 보도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실제 교실에선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을 언론에서 만들어냈다’고 비판했고, 혹자는 ‘그런 말을 들어봤다’고 반박했다. 이 단어의 존재 여부를 두고 엇갈린 의견이 있지만 해외여행 등으로 개근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형성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는 한때 개근을 성실성의 지표로 삼았던 시기가 있었다. 성실함이 최우선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언젠부터인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시되는 사회로 변해서였을까. 개근이라는 말의 중요성도 점차 퇴색됐다. 가상자산(코인) 투자로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벼락 거지’로 전락했다. 성실히 살아온 대다수의 사람은 좌절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개근 거지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게 된 것도 어쩌면 국회의원들의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인식이 시나브로 사회 전반에 스며든 때문은 아닐까. 의원들의 상임위 출석률을 조사한 시민단체는 이렇게 일갈했다. “국회법 32조와 국회윤리규범 제14조에 규정한 바와 같이 국회의원의 기본적이며 중요한 의무가 회의출석이다. 상임위원회 중심주의 국회에서 상임위 출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직무유기다.”

조병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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