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1592년 거북선’ 폐기 유감

2023. 8. 23. 23: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혈세 들여 만든 국난 극복 상징
건조된 지 12년밖에 안 됐는데
굴착기 동원 불쏘시개 만들어
다른 활용 방안 없었나 아쉬워

7월11일 거제도의 조선해양문화관에 전시되어 있던 ‘1592년 거북선’이 폐기 처분되었다. 굴착기로 거북선 등을 쳐서 산산조각을 낸 후 목재는 모아서 소각하고 철물은 고철로 고물상에 팔았다.

시가 30억원짜리 거북선을 이렇게 쉽게 불쏘시개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개인이 자기 돈으로 거북선을 만든 후 소각해버리는 것은 모르겠으나, 국민의 세금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임진왜란 극복의 상징인 거북선을 이렇게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태워버려도 되는지 묻고 싶다.
1592년 거북선의 폐기전 모습(2020)
거제시가 태워버린 1592년 거북선은 경상남도가 2010년 이순신 프로젝트의 하나로 세금 33억원을 들여 판옥선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입찰 시 경상남도가 제시한 원가는 판옥선 21억8000만원, 거북선 14억9000만원으로 총액은 36억7000만원이었는데 최종 낙찰 가격이 33억원이었으므로 거북선 가격은 13억4000만원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거북선을 건조하려면 25억원 이상 필요하므로 불쏘시개로 사용할 정도로 값싼 거북선은 결코 아니다. 경상남도가 2011년 복원한 판옥선은 실물 크기로는 처음 복원된 것인데 길이 41.8m, 폭 12.03m, 높이 9.51m로 조선시대 판옥선 중 가장 큰 ‘좌선’급이다. 1592년 거북선은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의 크기인데 최초로 3층 형태로 건조되어 세인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충남 서천에 있는 금강중공업에서 1년 반의 건조 기간 끝에 2011년 6월 완공하여 예인선에 의해 6월17일 거북선은 거제시 지세포항에 그리고 판옥선은 같은 날 통영시 강구안에 입항하였다.
판옥선 모습
그리고 며칠 후 판옥선과 거북선 건조에 사용한 목재가 국산 금강송이 아니라 수입 목재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립산림과학원에서 표본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 북미산 침엽수인 ‘더글러스 퍼’와 ‘헴록’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공분을 샀다.
9월8일에 밝혀진 수사 내용에 따르면 사용목재의 81%를 수입목재로 사용했는데 건조사 측에서는 국내산 금강송은 큰 목재를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서 수입목재를 사용했다고 변명하여 큰 물의를 빚었던 거북선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제작된 판옥선은 몇 번의 수리 끝에 지금도 통영의 강구안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같이 건조한 거제시의 1592년 거북선은 지난 7월 안타깝게 폐기되고 말았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1592년 거북선이 지세포항에 와서 정박해 있을 때부터 옆으로 기울어지는 등 불안해서 2012년부터는 육지에 올려놓고 전시를 하였는데 작년의 태풍 때 꼬리 부분이 파손되어 수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폐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012년부터 육지에서 전시하였으면 같이 건조해 바다에 띄워 놓은 판옥선보다는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먼저 폐기당하는 비운의 거북선이 된 것이다. 더욱 아쉬운 점은 전국의 지자체에서 복원한 많은 거북선은 거제시의 1592년 거북선보다 비슷하거나 훨씬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남해군 충렬사 앞바다에 전시된 거북선은 1980년 해군에서 복원한 거북선 1호로 1999년 남해군에 기증한 것으로 건조한 지 42년이 넘은 것이다.

그리고 1990년 서울시에서 건조한 한강 거북선도 한강 변에 있다가 2005년 11월 통영시에 기증하여 현재 강구안에서 32년째 전시용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거제시는 건조한 지 불과 12년밖에 안 된 1592년 거북선을 빨리 폐기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다른 시도에 기증하던지 좀 더 유익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전국에는 10여 척의 거북선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노나 돛을 이용해서 움직이며 함포까지 발사할 수 있도록 전선의 기능까지 제대로 복원된 거북선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북선이나 판옥선의 전통적인 추진체계인 노나 돛에 관한 기초연구도 없이 전시 목적으로 거북선을 건조했기 때문이다.

최신 잠수함에서 유조선까지 건조하여 수출하는 세계적인 조선 강국에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 같은 거북선을 임진왜란 후 43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제 기능을 갖춘 거북선 한 척 없는 것은 이순신 장군과 후손들에게 정말 창피한 노릇이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