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은 우연의 집합일 뿐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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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애틋하게 생각하는 멘토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멘토는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 책으로도 접할 수 있으며 대중 매체 혹은 생활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다 우연히 알게 된 멘토는 금오(金烏) 김홍경 선생이었다.
우연을 만나기 위해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사물 모두가 내 인생의 멘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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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애틋하게 생각하는 멘토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멘토는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 책으로도 접할 수 있으며 대중 매체 혹은 생활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경험이나 행동 그리고 가치관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할 때 우리는 그를 쉽게 멘토로 받아들이곤 한다.
나는 약학대학을 다녔지만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상한론(傷寒論)에 호기심이 생겨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우연히 알게 된 멘토는 금오(金烏) 김홍경 선생이었다. 당시 나는 한의대에 속한 신분은 아니라 직접 강의를 듣지 못했지만 선생의 강의 자료와 책들을 찾아서, 빌려서 여러 번 읽었다. 선생이 멘토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지식과 경험을 생활 속에 '쉽게' 전파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론을 쉽게 설명하고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드는 건 남다른 노력과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선생은 그런 분이었다.
안타깝게도 김홍경 선생은 2021년 12월 고인이 되었다. 한동안 바쁘게 사느라 선생을 잠시 잊고 지내던 때라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울에 먼 길을 떠난 선생이 한여름에 생각난 이유는, 여름에 시원해지기 위해 감상하는 스릴러나 공포 영화 때문이다. 나는 이런 영화들을 만날 때마다 선생이 생각난다. 선생은 이런 '공포'를 우리 몸속 12개의 경락 중에서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을 통해 쉽게 설명했다. 이 경락은 눈에서 시작해서 정수리를 거쳐 등을 따라 방광까지 이어지는 경락인데 공포를 느끼면 차가운 기운이 이 경락을 따라 흐르게 되면서 등골이 오싹하고 요의(尿意)를 느끼기도 한다. 하나 더, 우리는 상대방에게 화가 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다. 왜 그럴까? 그건 옆구리 쪽으로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이 지나가는데 그 경락에 힘을 보태어 대담해지려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선생의 이야기는 이렇듯 쉬운 예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필연이라는 것은 한 번에 뛰어 올라가서 도달하는 하나의 산등선이 아니다. 굽이굽이 걸어가며 우연의 봉우리를 계속해서 만나면서 마지막 우연까지 만났을 때 하나의 필연이 탄생한다. 하나하나의 봉우리들은 다 다르게 생겼다. 내가 선택한 산길에 따라 다른 봉우리를 만날 것이다. 물론 봉우리를 만나기 전의 풍경도 다 다를 거다. 우연을 만나기 위해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사물 모두가 내 인생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산책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TV를 보다가, 아이와 밥을 먹다가, 부모님과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모든 것이 우연들이다. 혹시 지금 내가 힘든 상황에 처했더라도 이건 하나의 우연에 불과하다. 혹은 어떤 필연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지금 힘든 건 변하지 않겠지만 힘든 상황을 나에게 닥친 필연이라고 생각하진 말자. 단지 우연일 뿐이다. 수많은 우연 중 하나. 내가 한 단계 더 평온해지기 위한 과정. 더불어 엄청 큰 교훈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지도 말자. 그저 우연일 뿐이다. 이것 아니라도 우리는 여러 우연과 여러 멘토를 수시로 만날 수 있다.
글을 쓰든, 친구를 만나든, 뭐든, 생각 끝에 하나의 행위를 한다는 건 내 인생을 아끼며 신중하게 꾸려가고 있다는 증거다. 행위의 결과는 우연이라 생각하자. 결국 모든 우연은 만나고 만나다가 어떤 만족할 만한 필연을 만들기 마련이다. 내가 또 다른 김홍경 선생을 만날 가능성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박훌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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