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물건 득실변경, 등기해야 효력 생긴다”면서도 ‘공신의 원칙’ 인정 안 해[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유희곤 기자 2023. 8. 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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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니코틴 살인 사건’으로 본 부동산등기의 빈틈
‘등기·점유 신뢰, 거래한 자 보호’
원칙과 다르게 법원 “공신력 없어”
허위 상속 모르고 아파트 산 A씨
살해당한 남편 조카에 소송서 져
부동산등기관 ‘형식적 심사’ 채택
“공신력 부여하는 제도 마련 필요”

경기 남양주에 살던 송모씨(당시 47)는 2016년 2월28일 동거인 오모씨(당시 53) 동의를 받지 않고 혼인신고서를 만들어 가족관계등록부에 두 사람을 부부로 등록했다. 오씨는 약 2개월 후인 4월22일 사망했고 송씨는 오씨 명의로 된 아파트를 상속받아 5월10일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송씨는 6월30일 A씨에게 아파트를 매매하고 소유권 이전등기도 마쳤다.

그런데 부검 결과 비흡연자인 오씨의 시신에서 다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경찰은 해외로 달아나려던 송씨와 그의 내연남이자 공범 황모씨(당시 46)를 8월17~18일 차례로 검거했다.

두 사람은 살인,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송씨와 황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2018년 11월29일 확정했다.

국내 첫 니코틴 이용 살인사건으로 꼽히는 남양주 ‘남편 니코틴 살인 사건’이다. 송씨와 황씨는 졸피뎀과 니코틴 원액으로 오씨를 살해했다. 세간의 관심을 끈 형사·과학수사 사건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도 새삼 주목받았다.

오씨는 직계비속(자녀), 직계존속(부모), 형제자매가 모두 없었다. 배우자가 없다면 유일한 법정 상속인은 조카 B씨뿐이었다. B씨는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오씨의 아파트를 송씨가 혼인신고서를 위조해 외관상 재산 상속인(참칭상속인)으로서 받았고, 이에 근거한(원인으로 하는) 오씨와 A씨의 부동산 매매는 무효라며 A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냈다.

A씨는 “아파트를 매수할 때 송씨가 참칭상속인인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명산 의정부지법 판사는 2018년 10월17일 “상속등기의 공신력이 없어 진정한 상속인인 원고(B씨)의 상속회복청구의 효과에 따라 피고(A씨)의 선의, 악의를 묻지 않고 피고는 상속재산(아파트)을 원고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법조문과 판결문 등에서 나오는 ‘선의’는 ‘몰랐다’, ‘악의’는 ‘알았다’는 뜻이다).

공신의 원칙이란 ‘등기나 점유를 신뢰하고 거래한 자를 진실한 권리자보다 더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신의 원칙대로면 남편 니코틴 살인사건에서 A씨는 송씨가 소유권자임을 부동산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하고 아파트를 매입한 만큼 B씨가 소송을 제기해도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

한국 민법은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 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제186조)면서도 공신의 원칙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명문 규정은 없지만 부동산 등기관이 서류가 제대로 제출됐는지 등을 형식적으로만 심사하는 ‘형식적 심사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공동으로 등기를 신청하게 하는 ‘공동신청주의’를 채택하면서 등기의 ‘추정력’만 인정하고 있다.

김대경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법 원안을 만들 때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 여부를 인정하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등기부 실태나 등기소 예산 등을 고려해 독일의 형식주의와 프랑스의 의사주의를 절충한 형식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볼 수 있는 기본지식이 있더라도, 아무리 꼼꼼하고 자세하게 보더라도 A씨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A씨가 송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송씨에게 그만한 재산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적고(송씨는 2013년 9월에 파산 면책 결정을 받았다)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 돈을 회수할지도 기약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민법, 부동산 실명법, 가등기담보법 등에서 일부 보완하는 제도가 있지만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을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제도가 독일의 정정등기제도, 이의등기제도,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제도 등이다. 독일의 부동산 등기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앱을 통하면 입주할 주택의 시세 및 악성 임대인 여부, 보증사고 이력, 지방세 체납 여부 등 집주인의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강윤중 기자

정정등기제는 부동산 등기 내용이 실제와 다른 내용이 있어 불이익을 보는 사람이 직접 등기를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제도이다. 이의등기제는 등기를 정정할 때까지 부동산의 공신력을 일정기간 배제하는 방식으로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부동산 등기 담당 공무원이 고의나 과실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키면 국가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등기관의 실질적 심사권이 없어서 한계가 있다.

윤철홍 숭실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독일은 1900년부터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진정한 권리자의 희생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부실 등기의 해소 방안과 함께 진정한 권리자의 보호를 위한 정정등기청구권 등을 도입해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도 동산처럼 선의 취득자, 즉 진정한 소유자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물건을 매입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민법 제249조는 동산 소유권의 선의 취득자를 보호하고 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는 “송씨가 참칭상속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특별히 과실도 없다면 A씨와 같은 부동산 물권 선의 취득자도 동산 선의 취득자와 동일하게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유치권이 표시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동산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을 낙찰받은 사람(경락인)으로서는 유치권이 있는지가 중요한데 이를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할 수 없어서 낙찰받은 후 유치권자에게 추가 비용을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찬양 고려대 강사(법학박사)는 “유치권 등기제도를 도입하면 유치권과 소유권·전세권 등 다른 물권 간 우선순위를 순위번호나 접수일자로 정할 수 있다”면서 “(일부) 반론도 있지만 유치권 분쟁의 핵심 논란인 공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부동산 경매에서도 법적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차

1. 법·부·금, 2030 모의고사
2.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하는 사회생활
3. 또 다른 전세사기 예방하려면
4. 법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
5. 교육은 없는데 일단 공격투자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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