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후쿠시마 주민들 “지역 부흥? 오염수에 다 빼앗길 것”
도매시장 상인들 자조 속 ‘체념’
“수산물 질 좋아도 제값 못 받아"
다음달 ‘방류 중단 요구’ 소송
“우리는 풍평(소문) 피해에 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기 하루 전날인 23일 후쿠시마시중앙도매시장 입구에는 이렇게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등 동일본 앞바다에서 난 수산물이 모두 모이는 도매시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곳이다. 포스터 속 문구는 이곳 상인들의 두려움을 압축하고 있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12년간 지역 부흥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은 오염수 방류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까 우려했다.
노리오 엔도 후쿠시마시중앙도매시장협회 전무이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아무리 값을 내려도 이곳에서 나는 수산물을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던 악몽 같은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아무리 질 좋은 수산물이어도 방사능 관련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서, 오염수 방류가 겨우 활기를 되찾은 시장을 12년 전으로 되돌려 놓을까 우려했다. 식재료 도매업을 하는 곤노 도시유키도 “이제야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가 해제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가 큰 걱정”이라며 “고향인 후쿠시마가 원전 사고, 오염수 방류 등 부정적인 뉴스로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다수 시장 상인들은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후쿠시마 어민들이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 오는 31일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보란 듯이 방류일을 24일로 기습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어민의 이해를 구하기 전까지는 방류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지만, 실제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승인과 한국 정부의 지지 등 국제사회 찬성 여론을 먼저 끌어올린 뒤 ‘올여름’이라는 시점을 못 박고 후쿠시마 현지 어민들을 압박했다. 과일도매상인 사토 도오루(35)는 “어차피 반대를 하더라도 정부는 방류를 강행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정부는 반응도 없고 변화를 보이지도 않아왔다”고 자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처리수(오염수의 일본 정부 표현)를 빨리 방류하지 않으면 폐로와 부흥 작업이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중앙TV는 후쿠시마 현지인들이 “오염수 탱크가 비워지지 않으면 원전 폐로가 진행될 수 없고, 그러면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이 영영 멀어지게 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이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전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염수 방류 찬성은 29.6%, 반대는 25.7%,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를 택한 응답자는 43.8%로 비교적 찬반이 팽팽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여기에는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한 사람들 역시 상당수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모 도모미쓰 소마후타바 어협 조합장은 “폐로 작업이 늦어지면 부흥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니,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마지막에는 결국 우리(어업자)만이 남겨질 것”이라고 후쿠시마 중앙TV에 말했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해수욕장 인근에서 생선요리 맛집으로 이름난 민박집을 운영하는 스즈키 노리코(67)도 “동일본대지진 첫해 손님이 70%가량 줄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드디어 여기까지 왔고, 가족끼리 다시 힘을 합쳐 살아갈 수 있는 것에 행복했다”면서 “(그러나 수십년간 진행될 오염수 방류로) 물고기는 어떻게 될까? 바다에 몸 담그러 올 손님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모든 걸 뺏기는 것과 같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후쿠시마 주민들은 이날 오후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류 계획 인가 취소와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다음달 8일 후쿠시마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낼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정부와 도쿄전력이 2015년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관계자의 이해 없이 (오염수의)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는데 방류는 이를 무시하는 행위로 계약 위반”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 이윤정 기자·박은하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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