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민주당, ‘조직’ 혁신 보류해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여러 가지 혁신안을 제시했다.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조직혁신 의제다. 혁신위원회는 대의원과 당원의 권력 배분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당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혁신안을 내놓게 된 배경은 첫째,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돈봉투 의혹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당직 선거에 숫자가 많은 당원의 권한을 키우는 게 현실적 대안이란 얘기다.
둘째는 민주당 당원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으므로 거기에 걸맞은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원의 규모에 상응하는 참여 기회와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혁신 의제에 대한 당내 반응이 아주 뜨겁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선 혁신안은 당원 포퓰리즘을 강화하게 될 것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당 지도부의 전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다른 한쪽에선 이것이야말로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민주주의 실현에 한 발짝 나아가는 일이라고 열렬히 지지를 표명한다. 이렇게 엇갈리는 반응과 함께 당 내부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조직혁신을 둘러싼 갈등은 일찍이 예상했던 일이긴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정도가 심각하다.
모양이 좀 빠지는 일이긴 하나 지금이라도 대의원과 당원의 권력 배분 구조를 변화시키는 조직혁신 의제는 검토를 잠시 미루는 것이 좋겠다. 혁신위원회의 선의에도 이 제안은 적지 않은 분란을 초래해 다른 혁신 의제의 빛이 바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직혁신 의제를 가장 크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민주당이 의도한 혁신 ‘의제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그것이 전략이었다면 조금 의아하다. 정당 혁신 프로그램에서 조직혁신 의제는 가장 나중에 다루는 게 공식처럼 돼 있다. 그것은 정당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앞으로 내세울 이유가 없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조직혁신 의제는 본질이 권력 배분 구조를 변경하는 것이어서 적잖은 갈등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 갈등은 십중팔구 ‘밥그릇 싸움’이라는 민망한 상황으로 번지게 돼 있다. 그래서 조직혁신 의제는 다른 의제를 모두 다루고 난 후 마지막 순서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전 혁신위에서부터 ‘대의원-당원’ 권한 배분 의제에 집착해 가장 나중에 내놓아야 할 걸 가장 먼저 올렸다. 전당대회 돈봉투 문제에 대응하느라 불거진 일이라고 하지만 이는 민주당의 혁신 의제 전략이 안이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의원-당원’ 권한 배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정당의 조직노선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것은 열린우리당부터였다. 그전까지 정당은 패거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 정당은 권력을 이미 잡은 자의 장식품이거나 그들에 대항하는 정치기제일 뿐이었다. 이것을 혁신해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만드는 일이 그때부터 계속되고 있다. 제왕적 총재와 과두지배 체제를 넘어서 민주적 정당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분명하게 정의된 권리, 의무를 다한 당원이 의사결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대중정당 모델이었다. 다른 하나는 느슨한 지지자 조직과 그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의회 활동이 정당의 핵심 역할을 하는 원내정당 모델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두 모델을 절충하는 것이었다. 엄격하게 의무를 이행한 당원들이 당의 주요 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점점 확대하는 동시에 원내대표의 지위를 대표 수준으로 격상하면서 의원총회가 당론 결정의 권한을 갖도록 했다. 각기 다른 역사적 맥락과 장단점이 분명하게 갈리는 두 가지 비전을 절충한 데 따른 시행착오도 있었다.
우리의 정당 조직은 조금씩 발전해왔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원의 숫자는 엄청나게 늘어났으나 그들이 정당의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실하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주권의 수임자로서 얼마나 공적 헌신을 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국회의원 기득권이 문제의 본질이며 당원의 권한 강화가 답이다’라는 주장이나 ‘강성당원들의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며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리더십의 회복이 답이다’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다투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가 조직혁신을 둘러싼 갈등을 합의로 이끌 수 있는 조정 능력을 갖고 있지 않거나 어느 한쪽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우월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면 조직혁신 의제 검토는 잠정 휴식을 하고, 민주당은 다른 혁신 의제에 매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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