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깊은 호흡] 고작 이런 좌절감
지난해 초, 당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한 친구와 광화문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경기도에 사는 그가 시내에 볼 일이 있었고 기왕 먼 길 나온 김에 얼굴을 보자고 한 것이다. 흔쾌히 좋다고 대답하며 내가 만날 장소를 정해서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옆 서촌에 사는 내겐 나만의 숨겨둔 인근 단골 카페나 맛집 리스트가 있었으니까.
그러고선 얼마 안 가 나는 가벼운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자랑스러운 즐겨찾기 리스트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는 휠체어를 탔는데 내가 편애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들은 같이 갈 수가 없었으니까. 울퉁불퉁 돌길의 골목에 있거나, 문턱이 있어서 휠체어 진입이 어려웠고, 지하철역에서 그곳까지 이동하는 동선도 수월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었다.
그런 사실들을 처음 인식하고 숨이 탁 막혔지만 이 드넓은 광화문에 설마 우리가 갈 수 있는 적당한 카페 하나 못 찾을까 싶어 차선책으로 광화문 고층 건물 안에 입점한 대형 카페들로 검색 범위를 넓혔다. 구글맵을 켜고 지하철역에서 그 건물까지 오는 동선에 무리가 없는지 확인한 후, 그래도 분위기가 나아 보이는, 가급적 멋없는 프랜차이즈형 카페가 아닌 세 곳을 추려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 각 카페마다 전화를 걸었다. 건물 안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제대로 있는 게 맞는지, 휠체어가 카페 안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예약을 할 수 있는지, 좌석 하나를 빼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지 미리 세세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은 카페 직원은 내가 처음 겪어보는 반응들을 보였다. 난처하고 어색한 목소리로 “아마 가능할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이해 불가능한 대답을 했다.
두 번째 카페 직원은 머뭇머뭇하다가 내가 먼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책임자’를 바꿔주겠다고 해서 그 시점에 내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지막 카페 직원은 무미건조하게 네, 네, 네, 라고 대답해주어 차라리 구원이었다. 대신 마지막엔 맵게 “하지만 자리 예약은 안 돼요”라고 못 박았다. 네, 알겠습니다라며 전화통화를 마친 나는 어떤 감정에 휩싸여 얼이 나가 있었다. 그 감정은 ‘좌절감’이었다. 나는 고작 그걸로 좌절하고 있었다. 고작 카페 하나 알아보는 것만으로 ‘좌절감’이라는 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당일, 예약은 안 된다는 그 카페에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했다. 장애인 남자 화장실이 몇층 어디에 있는지, 휠체어가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길에 문제가 없는지 우선 확인했다.
광화문엔 식당도 카페도 많은 대신,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자리를 확보해두기 위해 미리 가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약속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엔 카페 밖 건물 로비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에게 혹시 친구가 보이면 저 무거운 유리문 여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카페로 돌아와서는 맞은편 의자를 빼서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데 카페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고는 약속시간에 맞춰 친구가 카페 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 나는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아, 왔어요?’라며 세상 쿨한 척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였지만.
그때 느낀 어떤 생경한 좌절과 부대낌의 감정은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가는 장소마다 ‘이곳은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곳인가’를 습관적으로 살피게 되었다. 지역도시 출장이 잦아 KTX 예매를 자주 하는데 기분 탓인지 휠체어석·전동 휠체어석이 있는 차량이 가장 마지막에 마감되는 것도 의식되었다.
급기야는 지난해 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뉴스에는 나오지 않을 장애인 이동권 집회의 어떤 모습들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고작 장애인 친구와 같이 갈 수 있는 카페를 찾기 힘들다고 좌절감씩이나 느꼈던, ‘내 문제’가 되어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된 나의 비루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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