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사순이가 남긴 질문
사순이가 죽었다. 사설 농장에서 20년간 사람들의 볼거리로 살다 죽었다. 길이 2m, 무게 150㎏의 몸으로 4평 남짓한 사육장에 평생 갇혀 살다 죽었다. 어느 날 잠시 열린 문틈으로 첫 외출을 나섰다가 1시간10분 만에 죽었다. 처음 흙을 밟고 농장에서 20m쯤 떨어진 숲속으로 걸어가 가만히 앉아 있다 죽었다. 발견 즉시 사살된 이유는 사순이가 ‘맹수’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구에 250마리 정도만 남은 멸종위기 2급의 ‘판테라 레오(Panthera Leo)’종 암사자였다. 2023년 8월14일 오전 8시34분, 경북 고령군 숲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순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얼룩말 세로처럼 사순이도 동물원에서 탈출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개인 농장에서 살았다니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현행 ‘야생생물법’(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사순이 같은 멸종위기종은 동물원에서만 사육할 수 있다. 다만 사순이는 이 법이 제정된 2005년 이전에 개인이 사육해 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한다. 하지만 처음 그곳에 오게 된 경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멸종위기종이 아닌 야생동물은 개인이 키워도 된다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가능했다고 한다. 소설 <어린왕자>나 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특이하고 귀여운 야생동물, 즉 사막여우, 아홀로틀 등은 인터넷상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너구리, 도마뱀, 미어캣 등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야생동물 카페도 전국적으로 수십개나 된다. 하지만 작년 말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이 전면 개정되어 이 법이 시행되는 올 12월부터는 개인이 야생동물을 사육하는 일도, 야생동물과 직접 접촉하여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그렇다면 동물 카페에 있던 그 동물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혹시 동물원일까? 갈비뼈가 훤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서 일명 ‘갈비사자’라고 불리던 스무 살 늙은 수사자는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7년간 창문 하나 없는 실내의 시멘트 바닥에서 갇혀 살다 올 7월 구조되었다. ‘갈비사자’가 살던 동물원은 사순이가 살던 개인 농장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 동물원 중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공공동물원은 20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수백개는 영리 민간 시설이라는 것이다. 2021년 ‘어린이과학동아’에 따르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150개의 동물원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동물원은 총 345개이다.
어릴 때는 창경원에 동물원이 있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라는 동요 가사가 현실에서 펼쳐졌고, 아이들은 손뼉 치며 즐거워했다. 동물 전시 이전에 인간 전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였다. 1906년에는 콩고의 피그미족 남성이 뉴욕의 한 동물원에 전시되었고, 1907년 도쿄 권업박람회에서는 다른 볼거리와 함께 조선인 남녀 한 쌍이 전시되었다.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에서는 콩고인들을 현지 마을처럼 꾸며놓은 곳에 모아놓고 백인들이 바나나를 던지며 조롱했다.
우생학과 인종주의적 에토스 속에서 흑인, 장애인, 피식민지인을 우리에 가둔 그때처럼, 우리는 쾌락과 돈벌이를 위해 동물을 전시한다. 동물권 단체들은 동물의 고통을 양분 삼아 돈을 버는 동물원을,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을 보호·보존하는 ‘생크추어리(sanctuary)’로 변모시키자고 제안한다.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사순이의 사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관련 법규에 따라 야생동물의 사체는 박제되거나 소각된다고 한다. 2018년 대전 오월드 사육장에서 탈출해 4시간 반 만에 사살된 여덟 살 퓨마 뽀롱이의 경우, 박제를 고려했다가 ‘퓨마를 두 번 죽이지 말라’는 시민들의 원성 때문에 결국 소각되었다. 사순이도 비슷하게 처리될 것이다. 절차에 따른 소각이 죽은 동물을 마구잡이로 유기하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로 제공하는 일 따위를 막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난 여전히 그것이 동물의 죽음을 존중하는 방식일지 의구심이 든다.
‘반려종 선언’을 쓴 도나 해러웨이는 “종간 상호의존성은 지구에서 세계를 사는 게임의 이름이고, 그 게임은 응답과 존중의 하나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의 응답은 사순이가 남긴 질문을 따라가며 뒤늦게나마 야생동물의 사육 현실을 학습한 것이었다. 사순이를 애도하며 동물원 대신 다양한 생크추어리가 생기길 기원하며 이렇게 반려종 걸음마를 뗀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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