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가난한 개미, 부자 베짱이

오창민 기자 2023. 8. 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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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개미와 베짱이’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더운 날씨에도 개미는 쉬지 않고 일한다. 베짱이는 그런 개미를 비웃으며 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고 낮잠을 잔다. 겨울이 되자 개미는 쌓아둔 식량 덕에 풍족하게 살지만 베짱이는 쫄쫄 굶는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은 잘살고, 당장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게으르며 소비에 열을 올린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개미처럼 사는 사람이 가난한 경우가 많다.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 버스에 몸을 싣는 사람들, 모두들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반면 베짱이는 놀아도 계속 잘살기만 한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골프를 쳐도 통장에는 매달 이자가 쌓이고 임대료와 주식 배당금이 들어온다.

부(富)를 축적하는 방법은 두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을 통한 저축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이다. 일제 수탈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1950년대까지 한국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던 시절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경제성장률이 1%대로 하락했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이 저축으로 만들어진 자산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가 됐다. 10년치 월급을 모아도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렵다. 아파트 가격이 그사이 더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과거에 축적된 자산의 상속이 현재 축적되는 자산인 저축을 압도한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전제는 사유재산 인정이다. 합법적인 부의 축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부모가 피땀 흘려 일군 논밭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 부모가 재산 50억원을 자녀 2명에게 남겼을 때 상속세를 매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50억원에 세금을 매기고 이를 자녀가 절반씩 나눠 내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두 자녀가 각각 물려받은 25억원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앞의 방식이 유산세, 뒤의 방식이 유산취득세다. 한국은 유산세 방식이다. 누진세율이 적용되고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은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꾸고 세율을 낮춰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유산취득세로 바꾸면 세수가 당장 수조원 줄어든다. ‘부자 감세’ 논란이 일고 재정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인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유산취득세 전환이 빠지고 대신 출생률 제고 대책이라며 결혼자금 세액공제(최대 1억5000만원)가 등장했다. 자녀 등 직계비속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가 5000만원인데 결혼하면 여기에 1억원을 추가해주겠다는 것이다.

비과세 유산 1억5000만원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신혼부부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책이라는 찬성 의견과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박탈감만 주는 정책이라는 반대 의견이 있다. 하지만 상속은 부모의 재산이 대를 이어 자녀에게 전달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사회의 상속제도는 권력과 부를 분배하는 일종의 시스템이다. 사회의 정치·경제가 변하면 상속제도가 달라지고, 상속제도가 변하면 그 사회의 정치·경제가 달라진다.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부와 지위의 대물림 여부다. <상속의 역사>를 쓴 역사가 백승종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서구 유럽에서 상속의 초점은 상속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구제될 전망이 있는가에 맞춰졌다고 한다. 상속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흡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들도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부의 분배는 언제나 정치적이다. 거대한 부가 주로 상속의 결과인지 아니면 자수성가의 결과인지에 따라 불평등에 관한 관점과 정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한 상태에서 자수성가로 이뤄진 결과라면 이것은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연령에서 불평등이 심하고 그 불평등이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핵심은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을 용인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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