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경력 '1도 없는' 서기석, KBS 이사장 됐다
여권 측 이사 6명, 서기석 선출 찬성 '거수'… 서기석 본인도 손 들어
'삼성 관리 판사' 의혹 제기에 여권 측 이사 "이게 청문회냐" 반발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삼성 관리 판사' 의혹을 받는 서기석 KBS 이사가 23일 KBS 이사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법조인 출신인 서 이사장은 방송 관련 경험이 없다. 이날 검사 출신의 김종민 이사는 야권 측 이사들이 서 이사에 대해 질의를 하자 소리를 지르는 등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KBS는 23일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선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서기석·황근 이사가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남영진 전 이사장·윤석년 전 이사의 후임자가 된 뒤 처음 열리는 이사회였다. KBS 이사장은 호선으로 선출된다. 이사회는 자천·타천으로 이사장 후보를 고른 뒤, 후보가 추려지면 투표로 이사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정재권 이사(전 한겨레 사회부장)는 서기석 이사의 경력 부족을 문제로 꼽으며 여권 측 이사인 이상래·권순범 이사를 후보로 타천했다. 정 이사는 “서 이사는 이사장으로 손색없는 커리어를 갖고 있지만, 언론 경력은 많지 않다”며 “임기가 1년 남았는데, 남은 임기 동안 이사장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학교 반장이 그만뒀는데, 얼마 전 전학한 학생이 바로 반장이 되는 경우”라고 했다. 여권 측 이사들이 “연장자가 이사장을 하는 것이 관례”라며 서 이사를 추천하자 김찬태 이사(전 KBS PD)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추천하면 본인도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석래 이사와 권순범 이사가 후보 추천을 고사하고 서기석 이사를 이사장으로 추천했고, 결국 이사장 후보는 서 이사만 남게 됐다. 서 이사는 “어려운 시기 막중한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서 이사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면서 “KBS는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내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며 “함께 노력해 공정하고 중립적인 방송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서기석 이사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이상요 이사(전 세명대 교수)는 “수신료 통합징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해 정당성이 입증됐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권순범 이사는 “그런 건 이사장이 아니라 사측에 해야 할 질문”이라며 서 이사를 보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비판을 샀다. 김찬태 이사는 “동료 이사 질의에 관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조숙현 이사(전 인권위 행정심판위원)는 “다른 이사가 수렴청정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서 이사는 “(수신료 문제는) 내가 혼자서 결정할 문제도 아니다”라며 “KBS에서, 무슨 위원회지? 거기서도 연구하는 걸로 안다. 그분들이 전문가니, 이사장이 된다면 연구결과나 구성원 의견을 모아서 적절히 대처하겠다”고 답했다. 이사장 후보가 KBS가 공적 책임과 재원 모델 등을 도출하기 위해 만든 '공적 책임 수행을 위한 공론조사위원회' 이름도 모르고 있었던 것.
김찬태 이사는 “이사 2명이 강제해임된 자리에 보궐을 맡게 됐다. 이사 강제 해임 사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질의했고, 서기석 이사는 “좋고 기쁜 마음으로 임명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숙현 이사는 여권 측 이사들이 이달 16일 '이사장 선출' 안건을 긴급안건으로 제안한 것을 문제삼으면서 “왜 이게 긴급안건이 돼야 하는지 설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조 이사는 “남영진 전 이사장이 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를 신청했는데, 이사회 임기가 끝나기 전 법원 판결이 나오면 복귀해야 한다. 지금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건 대행으로 봐야 하는데, 남 전 이사장이 돌아온다면 자리를 내려 놓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서기석 이사는 “법대로 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류일형 이사(전 연합뉴스 기자)는 서기석 이사가 '삼성 관리판사' 의혹을 받은 것을 문제로 꼽았다. 김용철 변호사는 과거 삼성그룹 비리를 고발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2002년께 몇몇 검사들과 서기석 판사가 나와 함께 골프를 쳤다. 훗날 서기석은 내 양심고백을 계기로 열린 삼성 비리 사건 2심 재판을 맡아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고 적은 바 있다. 서 이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때인 2008년 이재용 현 삼성전자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서기석 이사는 “김용철이 책에서 날 언급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김용철은 개정판을 내면서 해당 부분을 수정했다”고 반박했다. 또 헌법재판소 수석재판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연구원으로 파견나온 검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파견검사의 골프 약속에 빈자리가 생기자 함께 간 적 있다고 했다. 왜 김용철 변호사를 고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고발은 체질에 안 맞다. 모든 사람이 고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김종민 이사는 “이게 청문회냐, 류 이사는 자격이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석래 이사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지, 지라시를 가지고 와서 그러냐”고 서 이사를 옹호했다.
이후 이사회는 거수 방식으로 이사장을 선출했고, 여권 측 이사 6명이 손을 들어 찬성했다. 서 이사도 손을 들어 자신이 이사장으로 임명되는 것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KBS 이사회 관계자 A씨는 미디어오늘에 “자신에게 투표한 게 민망한 상황인 건 맞다”고 밝혔다.
한편 이사회 직후 중앙일보는 <[단독]“30일 김의철 해임안 상정”…KBS이사회, 사장 교체 착수> 기사를 통해 이사회가 이달 말 김의철 사장 해임안 상정을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이사회나 이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A씨는 “여권 측 이사들이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사장 선출 후 여권 측 이사들은 KBS 노사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안정협약을 문제삼았다. KBS 노사는 회사가 경영상 이유로 해고 등 구조조정을 할 때 고용안정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고용안정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노사는 고용 안정과 관련된 부분을 협의할 수 있다. 이석래 이사는 “경영권 침해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권순범 이사는 “고용안정협약은 이사회 의결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이밖에 KBS 사측은 이사회에 올해 상반기 경영실적을 보고했다. KBS는 광고 실적 하락 등 요인으로 당기 순손실 461억 원, 사업 손실 541억 원을 기록했다. 사측은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영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반기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면서 “올해 4분기 수신료 수입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예산 상황에 따라 탄력적이고 즉각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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