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노인의 눈높이 그대로…호빗의 집에 다녀왔다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그곳은 호빗이 이 세상에 쏘아 올린 집이다. 의자와 탁자 높이가 모두 바깥세상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세면대도 높이가 너무 낮아서 마치 아이들만 사는 집 같다. 그 호빗의 집에는 호빗이 사는 게 아니라 거동 불편한 노인들이 산다. 걷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노인들은 모두 세월에 의해 앉고 보고 붙드는 것의 높이가 낮아진 사람들이다. 그 집의 사물들은 모두 그 높이에 맞춰져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말은 흔해도 ‘노인들의 눈높이’라는 말은 드문 나라에서 온 나는, 한국의 요양병원에서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높이에 충격을 받았다. 아픈 노인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세면대를 사용했지만 똑바로 걸을 수 있는 나는 허리를 90도로 굽혀야 했다. 바깥세상에서 불편했던 사람은 편해지고, 바깥세상에서 편했던 사람은 그 안에서 불편해졌다. 지난달 방문한 일본의료생협의 ‘개호노인보건시설’ 안 풍경이다.
그 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목욕실에 있는 각기 다른 기능을 갖춘 네가지 욕조였다. 아예 누워만 있는 사람인지, 앉아 있을 수 있는지, 걷는 것도 가능한지에 따라 욕조 모양이 달랐다. 노인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스스로 하도록 욕조를 선택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은 누군가 ‘스스로’ 하는 일에 비해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저 다양한 욕조들에서 발견한 것은, 일본의료생협이 노인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가 아니다. 일본의료생협 안에는 노인 스스로의 목소리가 이렇게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에서는 한번도 이런 욕조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도 똑같다. 한국에는, 노인을 위한다는 병원은 있을지 몰라도 노인들 스스로 만든 병원은 없다는 뜻이다. 노인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화장실에서부터 표지판, 앉아 있는 의자 높이까지 병원 구석구석 이를 반영하는 한국의 병원은 없다. 병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사람분의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아픈 노인은 없다. 기껏해야 시혜의 대상, 짊어져야 할 짐으로 취급받는 나이 든 존재가 있을 뿐이다. 아픈 노인들의 권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저런 욕조가 결코 나타날 수 없다.
돌봄을 새롭게 구성할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돌봄의 수혜자와 그의 가족들이 단순히 돌봄 대상자에 머물지 않고 돌봄의 주체로서 돌봄을 재구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노인들은 모두 돌봄을 ‘받는’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는 가족은 양로원을 경험하지 못한다. 양로원을 경험한 노인의 경험은 결코 양로원을 바꾸지 못한다. 민간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요양기관 경영자들은 입소한 노인들의 경험을 반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료생협이 운영하는 노인시설은 달랐다. 그곳에는 일단 ‘돌봄 회의’에 가족이 참여한다. 이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때 일본에서 의료운동을 시작했던 의사들은 단순히 주민 입장에서 친절한 진료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주민이 의료의 주인이 돼야 한다 판단하고 이를 실현할 조직 형태를 고민했다. 그것이 의료생협, 한국으로 치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우리는 노인 조합원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노인들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일본의료생협 직원이 한 말이다.
“그 요양원을 향해서는 오줌도 안 쌀 거야.” 왕진 가서 만난 홍 할머니가 한 말이다. 화장실에 갈 기력이 없어 차고 있던 기저귀에 대변을 찔끔 봤다. 똥기저귀를 그대로 차고 있기 불편해서 목욕시켜달라 부탁했다. 요양원 직원은 정해진 시간에만 목욕을 할 수 있으니 못 해준다고 했다. 수치심이 들었다. 냄새나는 몸 때문이 아니다. 그 몸에 대한 대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면회 온 가족을 설득해 요양원을 나온 할머니는 와상 환자가 돼서도 끝내 요양원에 가지 않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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