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구도 혁파 외치는 신생정당…대통령제 극복 외면은 자기모순

한겨레 2023. 8. 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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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 한겨레 자료사진

[왜냐면] 강수택 |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분주하다. 이번에 두드러진 양상은 거대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대규모 무당층을 노리는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물론 선거철만 되면 수없이 많은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굳건한 양대 정당 구도에서 새로운 정당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21대 총선에서는 양대 정당의 위성정당을 제외한 실질적 3당인 정의당이 전체 300석 가운데 6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당으로 38석을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순수한 의미의 신생정당은 아니었을 뿐 아니라 2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만 존속했다.

어쨌든 국민의당 같은 신당이나 소규모 정당들은 대부분 거대 양당 구도의 혁파와 3당 체제 혹은 다당제를 구호로 외친다. 그런데 순수 대통령제, 특히 대한민국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지속 가능한 3당 체제 혹은 다당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지닌 엄청난 권력을 둘러싼,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투쟁에 모든 자원이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거대 양당이 아닌 정당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다당체제를 위해 자신들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정의당은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다당제의 기틀을 마련해보려고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 바 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의 이런 노력을 무력화하면서 양당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물론 비례성을 높이고 사표는 줄이는 방향의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소규모 정당의 의회 진입과 의석 증대를 어느 정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강력한 대통령제의 틀 속에서는 거대 양당의 엄청난 흡인력이 소규모 정당의 지속가능성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혹여나 선거제도가 개선돼 소규모 정당이 의회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거대 양당 체제로 편입되기 쉽다. 거대 양당 구도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는 매우 분명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정의당 같은 기존의 소규모 정당이나 총선을 앞두고 새로 출범하는 정당이 거대 양당 구도의 혁파와 다당제 실현이라는 구호를 외칠 때 많은 유권자가 솔깃하게 되는 것이다.

다당제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순수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도 양대 정당 밖의 기존 정당이나 새로 출범하려는 정당 어디서도 대통령제의 극복과 의원내각제의 도입을 전면에 내세우는 곳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이러니다.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국민 약 70% 정도라는 압도적 다수가 대통령제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명분이며, 다른 하나는 정당 민주주의 발전보다는 자신 혹은 지인의 대통령 입후보에 실제로 더 큰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양당 구도의 혁파를 외치면서도 대통령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물 중심이 아닌, 이념이나 정책 중심의 성숙한 정당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앞으로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순수 대통령제를 지지하지 않는 여론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약 30% 정도나 된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이 대체로 공유했던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라는 매우 강력한 권력을 추구한 이승만을 비롯한 그 이후의 많은 정치 지도자를 거치면서 우리 국민에게는 어느덧 대통령제가 가장 친숙한 정부 형태가 되고, 의원내각제는 매우 낯선 형태가 돼버렸다. 이 과정에서 의원내각제에 대한 많은 편견도 퍼졌다. 그렇지만국민에게 의원내각제에 대한 바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염원하는 국민은 의원내각제를 그 대안으로 여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구하고, 거대 양당의 장애물을 적지 않게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당제 실현과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이 대한민국 정치의 선진화에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한다면 정의당이나 새롭게 출범하는 정당은 의원내각제 도입을 통한 다당제 실현이라는 목표를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에게 호소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들 정당의 미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를 위한 진정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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