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대량소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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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강연하면서 청중에게 공간과 시간이 뭐냐 물어보면 코웃음과 함께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가시적인 공간과 비가시적인 시간을 더하면 개념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앨범은 지나온 시절을 축적해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시간 속을 여행할 수 있었다.
작고한 '소비의 사회' 작가 쟝 보드리야르는 시간마저 대량소비하는 사회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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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가끔 강연하면서 청중에게 공간과 시간이 뭐냐 물어보면 코웃음과 함께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합해 ‘그럼 시공간을 아느냐’ 질문을 바꾸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가시적인 공간과 비가시적인 시간을 더하면 개념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선-면-공간으로 대변되는 1-2-3차원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거기에 어디론가 흐르는 시간이라는 차원이 첨가되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4차원 세계는 피상적이다. 마치 선위에 사는 생물 눈에는 점만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실제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차원보다 하나 낮은 차원까지만 인지하고 산다. 시간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는 특이한 매체가 있다. 바로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소수만이 누리던 특권적 행위였다. 카메라 자체도 비싸고 조작하기 어려웠거니와, 고가의 필름을 사서, 또 비싼 현상·인화를 거쳐야 하는 절차적 장벽 때문에 특별한 날에나 카메라를 꺼내곤 했다. 엄마가 차린 생일상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경복궁 소풍날 반 아이들과 함께, 강릉 여행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과 함께 한 순간들은 그렇게 소중히 종이에 기록되었고 앨범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앨범은 지나온 시절을 축적해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시간 속을 여행할 수 있었다. 시간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우리 곁에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4차원 세계에 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했다.
90년대 초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자 사람들은 메모리카드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겨 모니터로 사진을 보는 데 익숙해진다. 필름 걱정 없으니 애들 생일날 수십장 사진 찍는 게 가능해진다. 90년대 말 등장해 국민소셜네트워크 반열에 올랐던 ‘아이러브스쿨’, 그에 열광한 이유는 자신의 일상을 남과 쉽게 나눌 수 있는데다 편리해서 너무 많이 찍고 그래서 역으로 정리하기 어려워진 디지털 사진의 모순점을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이버 앨범 속에 그들의 시간을 축적했다. 그러나 모든 유행은 흥망이 있는 법, 결국 서비스는 중지되고 대중의 관심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앨범 속에 저장됐던 10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 편하고 매력적인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디카 시절에는 그나마 사진 파일을 컴퓨터에 옮겨 정리하고 한번씩 시디(CD)에 저장이라도 하던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찍고 올리면 되는 ‘인스타’나 ‘페이스북’이 등장하자 그 편리성에 금세 빠져든다. 그리고 기록보다는 공유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고 올리는 데 익숙해진다. 전화기에는 최근 몇년 동안 찍은 수천장 사진으로 가득 차 있고, 인기 소셜네트워크에는 매일 업로드되는 타인들의 멋진 사진이 넘쳐난다. 이처럼 사진을 대량소비한 적은 인류역사상 없었다. 19세기 중반 사진술이 발명되어 지금까지 인간이 찍어온 사진의 총량보다 최근 10년간 생산된 사진의 수가 더 많을 정도다. 작고한 ‘소비의 사회’ 작가 쟝 보드리야르는 시간마저 대량소비하는 사회라 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현재라는 시간을 과할 정도로 소비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 컴퓨터를 바꿀 때, 온라인 서비스의 유행이 바뀔 때 그들의 축적된 기억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에는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대인은 순간의 풍요에 취한 채, 기억이라는 시간은 사라진 파편화된 4차원 세계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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