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창의적 연구풍토 훼손할 연구·개발 예산 삭감 안 된다
내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이 전년보다 13.9%나 줄어든다. 2016년 이후 국가 주요 R&D 예산 감소는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나눠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예산안 대폭 삭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국가 R&D 예산은 2016년 한 자릿수 비율로 감축된 것을 제외하곤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내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보면 내년 주요 R&D 예산은 21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4000억원이 줄었다. 기초 연구 예산은 올해 대비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은 10.8%가 감소한다.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예산안이 대통령의 ‘카르텔’ 한마디에 졸속으로 삭감되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 R&D 예산안은 6월까지 확정돼야 하는데 6월 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심의가 중단됐고, 감사원이 운영실태 감사에 착수하자 충분한 검토 없이 삭감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부가 지난 3월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에서 ‘5년간 170조원의 R&D 예산을 투자해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것과 비교하면 당혹스러울 정도의 ‘급변침’이다.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R&D에 대한 정부의 투자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이론이 없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학문 생태계의 확장과 다변화, 창업 활성화와 민간 기술이전 등을 통한 국부창출, 해외 로열티 판매 등 성과를 냈다. 한국이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로 체질전환하는 데에도 R&D 투자가 동력이 됐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이 R&D 예산 삭감을 금기시해온 것은 투자 성과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도외시한 윤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과 예산삭감은 과학자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꺾는 일이다. 일부 비효율은 시정돼야 하지만, 예산 일괄삭감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의 중단, 인재유출, 기술혁신 지연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다. 당장 업적이 나오는 연구만 하고 창의적인 연구는 꺼리게 될 것이다. 이런 풍토가 지배하면 한국은 ‘도로 중진국’이 될 우려도 있다. 정부는 R&D 예산 삭감 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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