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핸드볼, 일본 꺾고 4전 전승 파리행…11연속 올림픽 진출 역사
경기 종료 1분 전, 류은희(헝가리 교리)가 날린 회심의 슈팅이 골망을 흔들었다. 25-23.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던 점수가 승부처에서 2점 차로 벌어졌다. 승기가 넘어왔고, 그대로 종료 휘슬이 울렸다. 1450여명 만원 관중이 집결한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는 이내 조용해졌다.
헨리크 시그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이 23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 방문 경기에서 25-24 역전승을 거뒀다. 앞서 인도(53-14 승), 중국(33-20 승), 카자흐스탄(45-24 승)을 차례로 꺾은 시그넬호는 4경기 4승을 기록, 1위 팀에게만 주어지는 파리 직행 티켓을 쟁취했다. 일본과 상대 전적은 41승1무5패.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일본 대표팀에 더해 안방 팬까지 상대해야 하는 혈투였다.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이미 관중석을 가득 채운 안방 팬들은 북소리에 맞춰 "레츠 고, 닛폰! (일본)"을 연호하고 파도타기를 펼치는 등 응원전 기선제압에 나섰다. 앞선 세 경기와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였다. 코트 위에서 몸을 푸는 한국 선수들도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초반은 끌려가는 흐름이었다. 강경민(광주도시공사)의 슈팅이 불발되며 공격권을 내준 한국은 일본의 레프트윙 요시도메 유키(호코쿠 은행)에게 실점을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0-5까지 뒤처졌다. 슈팅과 패스 정확도가 떨어지면서 일본 수비에 가로막혀 턴오버를 남발했고, 이어지는 일본의 역습을 저지하지 못했다. 결국 시작 5분 만에 시그넬 감독은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전반 5분45초 김보은(삼척시청)의 골로 첫 물꼬를 튼 대표팀은 반격의 고삐를 조였다. 전반 27분 김보은과 강경민, 주장 이미경(부산시설공단)이 연속 3점을 올리며 첫 동점(13-13)을 만들었고, 후반 11분 이미경의 득점으로 첫 역전(19-18)에 성공했다. 빡빡한 수비전 속에 아이자와 나츠키(호코쿠 은행)의 7m 던지기로 21-21 동점이 만들어진 뒤 4분 동안은 전광판 점수가 움직이지 않았다.
후반 24분 신은주(인천시청)가 침묵을 깨고 리드(22-21)를 되찾아 왔다. 일본이 다시 두 차례 따라붙었으나, 이미경과 신은주가 번갈아 골망을 흔들었고 마지막 류은희의 결정타마저 터졌다. 이날 수차례 상대 골키퍼와 수비진에 막혀 고전했던 류은희는 경기 뒤 “드디어 들어갔구나 싶었다”라고 순간을 돌아봤고, 강경민은 “(류은희 골을 보고) 이겼다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했다.
이날 한국에서는 피봇 김보은이 6득점으로 팀 내 최다 골을 넣었고, 강경민과 신은주, 류은희가 4득점씩 보탰다. 골키퍼 박조은(25·광주도시공사)도 후반 13분 일본의 7m 던지기를 막아내는 등 선방률 46.2%(6/23)로 활약했다. 일본에서는 나츠키가 9득점으로 양 팀 최다 득점을 올렸고, 결정적 고비마다 일본의 철벽 노릇을 한 카메타니 사쿠라(프랑스 ESBF 브장송)가 선방률 21.4%(6/28)를 기록했다.
선수단의 헹가래를 받고 나온 승장 시그넬 감독은 “정말 짜릿한 승부였다”라며 “일본은 조직력이 좋고, 속공과 역습에 능해 우리가 초반에 고전했으나 선수들이 기죽지 않으며 잘 반격했다”라고 했다. 지난 5월 부임해 첫 임무였던 파리행 티켓을 따낸 그는 “현실적으로 지금은 올림픽 메달에 가깝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발전할 시간이 있다는 뜻”이라며 멀리 내다봤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지난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11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다. 남녀 핸드볼 역사상 전례 없는 대기록으로 대표팀 최고참인 류은희와 이미경조차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온 한국 핸드볼의 위엄이다. 류은희는 “일단 그 기록을 저희가 이어갈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제가 (기록을) 깨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와 기쁨을 같이 느낀다”라면서 웃었다.
경기 뒤 시상식에서는 강경민이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신은주와 이미경이 각각 레프트윙과 레프트백으로 베스트7에 이름을 올렸다. 예선 2위로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올림픽 출전권을 다퉈야 하는 일본은 하토리 사키(라이트윙), 나카야마 카호(라이트백), 나츠키(센터백), 나가타 미카(피봇) 등 네 명의 베스트7 선수를 배출한 데 만족해야 했다. 골키퍼에는 중국의 루 창이 선정됐다.
큰 산을 넘은 시그넬호는 24일 귀국해 휴식한 뒤 다음 달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 대비에 나선다.
히로시마/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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