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문 닫은 부경동물원…동물들 위해 먹이가 배달됐다

이지현 기자 2023. 8. 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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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동물원 실내사육장에서 지내고 있는 암사자. 청주동물원으로 자리를 옮긴 사자 '바람이'의 딸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후원금 모금 이틀 만에 1000만원 가까이 모였어요. 이렇게 많이 후원해주실 줄은 몰랐죠. 이 정도면 저희가 보기엔 두 달 정도는 먹이를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김애라·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

지난 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 사자와 호랑이 등 몸집 큰 맹수들이 좁은 실내 사육장에서 지내 열악한 사육환경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곳입니다. 코로나 19 때부터 운영이 어려워진 동물원은 최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이어진 재정난에 관람객 발길까지 끊기면서 이제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조차 버거워졌다는 겁니다.

결국 동물보호단체가 나섰습니다. 후원금을 모아 부경동물원에서 지내고 있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지원하기로 한 겁니다.

오늘(23일) 동물보호단체의 먹이 지원 현장에 취재진이 같이 가봤습니다.

23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이 후원금을 모아 부경동물원에 보낸 동물들의 먹이 일주일치 중 일부.〈사진=이지현 기자〉

아직 동물원에 남아있는 동물 50여 마리



동물원 운영은 중단됐지만 50마리 정도 되는 동물들은 여전히 동물원 안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

지금은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진 사자 '바람이'의 딸은 바람이가 지내던 실내 사육장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백호 두 마리도 좁은 사육장 안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부경동물원 실내 사육장에서 지내고 있는 백호 두 마리.〈사진=이지현 기자〉
맹수보다 덩치가 작은 원숭이와 사막여우, 너구리, 앵무새 등도 실내 사육장에서 생활 중입니다.

실외 사육장에는 양과 염소, 거북이, 원숭이 등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부경동물원 관계자는 “동물원 운영이 중단됐어도 동물들은 매일 돌봐야 한다”면서 “매일 1~2번씩 먹이를 주고 있고, 청소도 최소 이틀에 한 번씩은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달 먹잇값 500만 원…“두 달 지원 가능할 듯”



동물원에 따르면 한 달에 들어가는 먹잇값은 500만원 정도입니다.

이번에 모인 후원금 1000만원으로는 두 달 정도 먹이를 지원할 수 있는 겁니다.

이날 배달된 건 동물들이 먹을 일주일 치 생닭과 120kg 정도의 과일과 야채.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큰 동물들이 먹을 닭과, 작은 동물들이 먹을 야채, 과일, 건초 등을 주문했다”며 “오늘 배달된 먹이는 일주일 치 먹이다. 동물원에서 보관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먹이를 보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막 배달된 생닭을 사육장에 넣어주자 백호들은 순식간에 넣어준 닭들을 먹어치웠습니다.

사자와 흑표범은 오랜만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는지 조심스럽게 먹이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부경동물원 실내사육장에서 지내고 있는 암사자. 청주동물원으로 자리를 옮긴 사자 '바람이'의 딸이다. 〈사진=이지현 기자〉

부경동물원 “적자 규모 심각…무상 기증은 어려워”



열악한 사육환경에 대한 논란이 있은 뒤 부경동물원을 폐쇄하라는 민원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동물들을 돌볼 여건이 안 되면 다른 곳에 기증하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죠. 하지만 동물원 측은 무상 기증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김준 부경동물원 대표는 “코로나19 때 정부 정책에 따라 강제로 영업을 중단해야 했고, 관람객 발길도 끊기면서 적자가 너무 심각해졌다”면서 “솔직히 동물원에 있는 직원들 월급도 밀려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있는 재산을 다 처분하고도 빚더미에 앉아있는 상황이라 동물들까지 무상으로 기증하기는 힘들다”고 했습니다. 또 “저도 동물들이 가급적이면 더 좋은 환경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라면서 “여러 단체와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논의 과정에 있긴 하지만, 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부경동물원 관계자는 “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해도, 그곳 역시 사육시설 등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이곳에 있는 동물들을 한 곳으로 한꺼번에 보낼 수도 없는 만큼, 조율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부경동물원 측은 일단 올해 12월까지 동물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동물원을 완전히 정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부경동물원 실외 사육장에는 양과 염소, 거북이 등이 생활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사설 동물원 아직도 많아…정부가 보호구역 만들었으면”



당장 동물원의 동물들이 굶지 않도록 동물보호단체가 후원금을 모았지만 지원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일단 모인 후원금으로 두 달 동안 먹이 지원은 하겠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는 만큼 그 이후는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며 “계속 지원을 하는 것보다 동물들이 이른 시일 내에 더 나은 환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입장에서는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공영 동물원 등에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동물들이 갈 수 있는 더 나은 곳을 알아봐 주거나 지원을 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 〈사진=이지현 기자〉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더 나아가 동물들이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보호구역 '생츄어리(Sanctuary)'를 정부가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전국적으로 아직도 많은 사설 동물원들이 남아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규모가 있는 생츄어리를 만들어 동물들이 원래 습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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