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트리니티 그후 78년
맨해튼 공병부대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의 정점은 1945년 7월16일 새벽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이뤄진 최초의 핵무기 실험 ‘트리니티’였다. 사실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준장,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 등 핵개발 참여자들이 폭발 지점 약 9㎞ 밖에서 고글만 쓰고 엎드린 채 폭발 후 모래 폭풍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이들은 근처 로스앨러모스 핵개발촌에 가족들을 동반해 출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당시는 연구 참여자들도 방사능 낙진의 정확한 영향을 모르던 때였다. 포츠담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을 만나고 있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핵실험 성공 여부를 보고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핵개발 참여 과학자와 노동자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던 주민들은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일은 영화의 관심이 아니다. 핵실험의 방사능 영향을 측정한 초기 데이터의 부재는 그 후로 많은 비극을 낳았다. 방사선 방호 원칙, 피폭증 대책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네바다·태평양상 핵실험, 스리마일·체르노빌 핵사고 등을 거치며 뒤늦게, 그것도 매우 불완전하게 마련됐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트리니티 핵실험 당시 피폭에 관한 관심을 환기할 만한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프린스턴대 과학·글로벌안보 연구팀이 핵실험 당시 날씨 데이터 등에 기반해 내놓은 분석을 보면 핵실험 열흘 만에 방사능 낙진이 미국 46개 주와 캐나다, 멕시코까지 퍼졌다. 인류세 기준 지층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 바닥에 플루토늄이 내려앉은 것도 이때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뉴멕시코 주민들 피해가 가장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78년이나 지났으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을 겪다가 숨졌을지 모른다.
핵실험, 원전 가동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생겨난 방사성 물질은 지구의 땅과 물을 덮으면서 ‘생활주변방사선’의 일부를 이룬다. 트리니티 핵실험처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한 방사성 물질의 영향도 언젠가 틀림없이 누군가에겐 미칠 것이다. 그것이 규명되려면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78년이나 걸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자면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오펜하이머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자신들이 아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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