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한경협, 역할 구체화가 우선이다
"지난 5월 18일 발표한 혁신안을 이행하기 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간 통합합의문'을 채택함으로써 기존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조직, 인력, 자산, 회원 등을 모두 승계해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이번 통합의 결과 4대 그룹도 새 단체 한경협 회원이 됩니다."
전경련은 지난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1961년 출범 당시 명칭인 한경협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새출발을 한다고 선언하면서 이 같은 공식입장도 내놓았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는 재계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였기에, 출범부터 4대 그룹과 함께 가는 그림을 얼마나 그리고 싶었을까. 잡음이 많았지만 모양새는 갖췄다.
전경련 고문으로 남게 된 김병준 전 회장직무대행은 4대 그룹에 총회 전 복귀해달라고 강하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전경련 총회 6일을 앞두고 임시회의를 열어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을 논의했다. 당일 위원들 간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자 이틀 후인 지난 18일 다시 회의를 소집해 이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계기로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은 일부 계열사가 형식상 회원사로 합류하는 방식으로 복귀를 하게 됐다. 신뢰를 회복하기도 전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정경유착 꼬리표를 떼지 못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는 게 찜찜할 것이다. 삼성은 '전경련 복귀' '전경련 재가입'이라는 워딩이 불편하다.
삼성 관계자는 "저희는 전경련에 복귀하는 게 아니라 한경협에 잔류하는 것"이라며 "쇄신 전 전경련에는 복귀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준감위도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짧은 기간 안에 혁신안을 내고 회원 승계 방식의 우회적 가입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전경련은 쇄신보다 4대 그룹 재가입을 먼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누렸던 '재계 맏형' 위상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앞서는 바람에 정작 혁신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시작도 안 한 분위기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정치권력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며 명칭을 바꾸고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전환하겠다고 내놓은 혁신안은 아직 선언에 불과하다. 혁신안 실천을 놓고 여러 의문이 나온다. 삼성 준감위도 "실제로 혁신안이 실현될 가능성,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류진 전경련 신임회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는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며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고 강조했지만, 윤리위원회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상근부회장으로 외교부 관료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거론되는 것 역시 "부회장을 뽑았는데 정관 개정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9월 중) 후 부회장단을 한꺼번에 발표하겠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만 드러냈다.
글로벌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는 한경협의 핵심 역할에 대해서도 류 회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 양보다 질의 관점으로 인력과 정보를 확보하고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정도의 설명이다.
'정경유착 과거 청산을 통한 신뢰성 회복과 더불어 한국 경제의 글로벌 도약에 앞장서고,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말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변화는 말보다 실행이 우선돼야 한다. 하루 빨리 혁신안 세부 방안을 마련해 끊임없이 소통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신뢰도 따라올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을 하려면 류 회장의 실행 의지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윤리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윤리위원회가 돼야할 것이다. 한경협 안에서 김병준 고문이 어떤 임무를 수행할 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정치권 출신인 김 고문은 스스로 정치인이 아닌 학자라고 강조한 만큼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류 회장과 나눠 조직의 쇄신에 적극 가담해야 한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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