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보호받지 못한다는 교사의 고립감 해소가 교육환경 개선 지름길"

임재섭 2023. 8.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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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 노트 만들다 교사의 길 선택
학생 인권만 강조 교권 보호 소홀
학교폭력 다룰 땐 양측 미움 받아
인권존중·교육본질 '조화'가 중요
배민호 전일중학교 교사(학교폭력책임교사 및 교권보호책임관). 박동욱기자 fufus@
배민호 전일중학교 교사(학교폭력책임교사 및 교권보호책임관). 박동욱기자 fufus@
배민호 전일중학교 교사(학교폭력책임교사 및 교권보호책임관). 박동욱기자 fufus@
배민호 전일중학교 교사(학교폭력책임교사 및 교권보호책임관). 박동욱기자 fufus@

교내 학교폭력 책임교사 배민호 전일중학교 선생님

"선생님은 교육자니까 아이들이 잘못한 부분은 잘못했다고 지적해야 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싫은 것도 시켜야하는데, 당사자가 피부에 와닿을만한 방법이 제시되지 않고 학교도 교사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결국 학생·학부모와 학교에서 모두 기댈 곳이 없는 교사는 외롭고 고립된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전일중학교에서 교내 학교폭력 책임교사이자 교권보호책임관으로 근무하는 배민호(36·사진) 교사를 지난 20일 디지털타임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배 교사는 최근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건 등 잇따른 교권 관련 사건들의 원인을 젊은 교사들이 느끼는 '고립감'에서 찾았다. 교육계에 학생인권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오랜 기간 누적된 게 구조적인 문제인데, 이를 고칠 '개혁'에는 손대지 않아 책임이 일선 교사들에게 떠밀려왔다는 것이다.

그는 "내 지도가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불안감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서 "교사는 학교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면서 여러 아동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위한 권한은 부여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가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7일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였다. 당시 교육부는 '고시'에서 학생인권조례보다 우선 적용된다면서 수업방해 학생을 교실 안팎으로 분리하는 내용 등을 담았지만 훈육 목적의 체벌이나 벌 청소는 안된다고 해 일각에서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그는 "학교에 오는 80~90% 아이들은 문제가 없다.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인성이 갖춰진 학생들이 많다"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아이들은 있기 마련인데 이들에 대한 훈육을 아동학대라며 직위해제까지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규칙과 질서를 망가뜨리려는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데, 교육부의 최근 결정이 이런 부분을 충분히 담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10년차 교사지만 그간 한 번도 교권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묵묵히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고3 수능 열흘 전 오답 노트를 정리하면서다.

그는 "학창시절에는 교사가 될 줄 몰랐다. 그런데 고3 때 오답 노트를 만들다 보니 같은 내용도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쉽게 설명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작업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다른 과목보다 국어에 재미를 느껴 사범대로 진학, 국어 선생님이 됐다.

그는 지금 학교폭력 책임교사이자 교권보호책임관을 맡고 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을 접수받아 조사·처리하는 역할을 하고, 교권보호책임관은 교권침해 사안이 있으면 이를 확인하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피해·가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이야기를 청취하고 경중을 따지는 일이다 보니 교사들이 기피하는 게 보통이다.

그는 학교폭력 관련 사안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어 과거 학교를 다녔던 경험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단적인 예로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다 보면 학생 측으로부터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상해가 꼭 있어야만 학교폭력으로 접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째려보기만 했어도 폭력으로 본다"면서 "일단 접수된 사건은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구조에서 피해 학생이 '상대방이 째려봤으니 나는 피해를 입었다'면서 해결해달라고 하면 교사는 명확한 증거나 확인할 방법도 없이 사건을 처리만 해야하는 입장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면서 "가해자한테 해당 사실을 설명하면, 가해자의 반발도 결국 고스란히 교사의 몫이 되면서 양측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고 전했다.

배 선생님은 "교사들이 수사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진술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달리 알아볼 방도도 없다"면서 "심지어 주말이나 방학 때 계곡·수영장 등 멀리 놀러 가서 다른 지역·학교 친구랑 싸웠다고 학교폭력으로 접수하면 교사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아동을 최대한 찾아보며 사건을 담당하는 사례도 생긴다"고 했다.

나아가 "심지어 피해 학생 측에서 가해 학생을 무릎 꿇리라는 식의 요구도 받는다"고 귀뜸했다. 이런 사건을 몇 번 겪고 나면 교사 입장에서는 학부모와 학생, 학교 모두 지지해주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서이초등학교나 의정부 교사의 극단적 선택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 사이에서 어느 곳도 선생님의 편이 돼주는 곳이 없어서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의사가 특정 아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이 유명해져 학부모의 눈높이가 이전과 달라진 것도 교사와가정 간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특정 아이에게 인지행동치료를 제시하는 과정은 가정에서 교육해야 하는 영역이고 학교에서는 전체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는 '질서' 등을 배워야 하는 영역으로 구분돼야 하는데 이를 동일시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배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인권 존중과 교육의 본질 간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축구팀을 운영하는데, 한 선수가 '나가 뛰기 싫다'면서 안 뛰고 자버리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라면서 "'깨워서 하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선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학생인권조례에 휴식권이 있는데, 과중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적절한 휴식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걸 휴식권을 행사하는 것이니 침해하지 말라고 해석하면 주변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보장될 수 없지 않겠나. 생각해 볼 문제"라고 했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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