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권위’ 업고, 현지인 ‘딜레마’ 몰아넣고...일본 정부의 방류 여론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면서 “어민의 이해를 구하기 전까지는 시행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올 여름’이라는 시점을 못 박고 후쿠시마 현지 어민들을 압박했다.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승인과 한국 정부의 지지 등 국제사회에서 찬성 여론을 먼저 끌어올린 뒤 후쿠시마 어민을 포위한 모양새다.
도쿄전력의 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는 2018년부터 선택지로 포함돼 있었지만 반복적으로 연기됐다. 안전성 등의 논란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20주년 행사에서 오염수 방류를 언급하지 않았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 7월 방일해 “일본 정부의 오염수해양방출계획은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말하면서 일본 정부의 행보에 힘이 실렸다. 기시다 총리는 이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발언할 때마다 과학을 강조했다.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방류 일정을 밝힐 때에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대응에 폭넓은 지역·국가로부터 이해와 지지 표명이 이루어져 국제사회의 정확한 이해가 확실히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공개 지지한 것도 일본 정부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 방류 날짜를 조정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3일 일본 정부는 8월 중 방류를 계획했으며,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이 8월 말에서 18일로 앞당겨지자 한국 정부를 배려해 방류 개시일을 8월 하순으로 늦췄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에도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등으로부터 과학적 근거가 없는 비판을 뒤집어쓰면서도 방류 계획에 대한 이해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IAEA와 한국 정부의 지지를 업은 일본 정부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정작 자국내 여론이었다. 교도통신이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전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염수 방류 찬성은 29.6%, 반대는 25.7%,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를 택한 응답자는 43.8%로 비교적 찬반이 팽팽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반면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30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찬성’이 58%, ‘반대’가 30%였다.
일본 정부는 “처리수(오염수의 일본 정부 표현)를 빨리 방류하지 않으면 폐로와 부흥 작업이 늦어진다”는 논리로 국내 여론을 압박했다. 후쿠시마 중앙TV는 후쿠시마 현지인들이 “오염수 탱크가 비워지지 않으면 폐로가 진행되지 않고, 이 때문에 지역의 부흥이 영엉 멀어지게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찬성 여론도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찬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카모토 마사노부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장은 “(해양방류가 되지 않으면 페로가 안 된다는) 기성 시실을 만들어놓고 현지를 압박했다”고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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