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유재선 감독, 경제학도가 '봉준호 키드' 되기까지 [MD인터뷰](종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연출부 몸담아
"봉준호 키드? 기대에 부응하는 감독 되고파"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유재선 감독이 '잠'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했다.
2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영화 '잠' 극본과 연출을 겸한 유재선 감독을 만났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2017) 연출부에 몸담았던 유재선 감독이 처음 선보이는 장편이다. 제1장, 제2장, 제3장으로 나뉘어 펼쳐지는 영화는 일상의 소재인 잠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몽유병을 다루지만 환자가 아닌 그와 가장 친밀한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는 94분 내내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돌진한다. 공포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에 이르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개성 있는 폭주를 이어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긴장, 불안의 정서가 나란히 증폭하는 건 유재선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과 배우진의 호연은 물론 미술, 소품, 조명, 음악이 보게 좋게 어우러진 덕이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으며 제56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대받았다. 국내 개봉을 앞둔 마음을 묻자 "차원이 다른 기분"이라면서 운을 뗀 유재선 감독은 "각본을 쓸 당시부터 편집할 때까지 한국 관객을 마음에 뒀다. 어떻게 보실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유재선 감독은 경제학도다. 대학에서 우연히 듣게된 문예 창작 수업이 그를 영화계로 이끌었다. 전역 후엔 교내 비공식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영화 '버닝'(2018) 자막 번역, 영화 '메기'(2019) 영문 번역도 거쳤다.
'잠'을 쓸 무렵 지금의 아내가 된 연인과 결혼을 바라보고 있었던 유재선 감독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삶을 녹였다. 보통 결혼 이야기를 다루면 주된 갈등이 서로 싸우거나 실수를 하거나 사랑이 식는다"며 "전 아무래도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낭만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지 서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부부를 설정해놓고 누구의 탓도 아닌 외부에서 온 장애물을 던지고 부부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또 유재선 감독은 몽유병에 "피상적인 관심이 있었다"면서 "누구나 몽유병 환자에 대한 극단적 괴담을 듣는다. 잠결에 베란다에서 떨어내린다든지 수면 중 운전한다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몽유병 환자의 일상은 어떨지 궁금해졌다"라고 설명했다.
논문과 수면 전문의 등의 도움을 얻어 고증했다. 유재선 감독은 "인터넷과 다큐멘터리 조사도 많이 했다. 각본 단계에서 했다"며 "촬영 준비 단계에선 소개받은 수면 전문의를 만나고 논문을 탐독했다"라고 알렸다.
유재선 감독은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원하는 배우가 누구냐'는 제작사 대표의 물음에 정유미와 이선균을 꼽았다고 했다. "두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장르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데 한편으론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 연기에도 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장르 연기를 할 때도 현실적인 연기 톤이 있었다. 꼭 필요한 연기 톤이라고 생각해 함께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유재선 감독이었다.
일명 '봉준호 키드'로 불려 "두 가지 이유로 부담스럽다"고 웃었다. 유재선 감독은 "한 가지는 기대가 올라가 부응하는 결과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론 좋은 자극이 됐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잘 만들어야 한다. 어중간하면 본전도 못 찾는단 생각으로 혼을 갈아 넣어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어 "또 한편으론 봉 감독의 이름에 누가 될까 봐. 형편없으면 '별거 없네'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며 "기대에 부응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잠'은 오는 9월 6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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