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화가 나 있는 사회

여론독자부 2023. 8. 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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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넷플릭스의 '성난 사람들(BEEF)'이라는 블랙코미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다.

개인적인 연결이 없는 낯선 사람들을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계층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성별·직업,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리하고 편향을 만든다.

나의 개별성을 찾고 의미 있는 연결을 찾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화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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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한소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서울경제]

지난봄 넷플릭스의 ‘성난 사람들(BEEF)’이라는 블랙코미디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주요 배역이 모두 동양인이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다. 주인공 대니는 집을 고치는 계약직으로 부모님과 남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국계 청년이다. 열심히 일해도 경제적으로 희망이 없고 공허하다.

대형마트의 주차장에서 난폭 운전을 한 고급차를 전속력으로 추격하면서 그의 보복 상대가 된 에이미는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역시 화가 쌓여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를 갖고 있지만 백인 구매자의 무시와 차별, 부유한 시어머니의 끊임없는 간섭, 잘사는 환경에만 익숙한 짜증스러운 남편으로 둘러싸인 에이미의 내면에는 폭발 직전의 분노가 쌓여 있다. 지나칠 만큼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것을 강조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 드라마는 신선한 공감을 줬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든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온 유명한 첫 문장이다. 불행하고 성난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개별성이 더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드러나는 갈등은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지만 인간의 내면은 더 복잡하다.

지금 시대는 화가 날 이유가 많다. 양극화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는 어느 쪽에 있어도 화날 일이 많다. 지금 커리어를 시작하는 세대에게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이 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키운다. 겉으로 보면 화려한 경제는 남들만 잘사는 것 같고 나의 기회는 빼앗겼다는 분노가 생길 때도 있다. 이런 집단적인 분노 중에는 인류 전체를 포함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환경문제도 있고 인류애에 근거한 분노도 있다. 그런 분노는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단을 나눠 화를 낼 때는 다른 집단을 비인간화하고 더 극심한 판단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개인적인 연결이 없는 낯선 사람들을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계층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성별·직업,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리하고 편향을 만든다.

우울증에 가장 나쁜 행동 습관이 반추라고 한다. 곱씹어 똑같은 생각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현대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집단 반추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의견과 부합하는 생각이 메아리치는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꼭 이렇게 암울한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화가 나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더 기능적으로 유용하게 화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의 개별성을 찾고 의미 있는 연결을 찾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화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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