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상주할 것"→"세계 흐름 파악하려면..." 말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 '162일'

유지선 기자 2023. 8. 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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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다수가 '주어'를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 같다. 맞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다. 그가 말을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62, 반년도 채 넘기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8일 일부 미디어를 대상으로 화상 미디어 간담회를 가졌다. 조목조목 설명해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22패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다. 비단 성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전 사례들을 봐도 팀을 파악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결과가 늘 따라오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려스럽던 '재택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그를 향한 여론이 싸늘하게 식었다. 9A매치 명단 발표도 클린스만 감독의 제안에 따라, 기존의 기자회견이 아닌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니, 참 기가 막힌 노릇이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독일 대표팀을 이끌 당시에도 재택근무 문제로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요즘이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시스템이 이전보다는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서간 셈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9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과거 논란이 됐던 재택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이렇게 답했었다.

"한국 감독이기에 (한국에) 상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다. 이번엔 운 좋게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지금까지만 놓고 봤을 땐, 속된 말로 '공수표'를 날렸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땅을 밟은 38일을 기준으로, 그가 한국에 머문 기간은 67일 뿐이다. 반대로 해외에 머무는 기간은 102(823일 기준)에 달한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면담하고 점검하기 위해 출국했던 4, 아시안 컵 조 추첨식에 참가한 5월 중순 일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후 일정은 그야말로 '의문투성이'. 클린스만 감독은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자택에 머물렀고, 6A매치를 마친 후엔 해외로 한 달간 휴가를 떠났다. 8월에는 자선 행사 등 각종 이유로 한국을 떠나있다.

모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일정들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에 대해 "7~8월은 대표팀 소집이 없는 기간이다. 대한축구협회와 계약하기 전 잡혀있었던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걱정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업무 방식이 색다르게 느껴질 거다. 이미 약속된 일정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기술위원직이 8월까지 유지되므로, 불가피하게 각종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럼 그의 말대로 이전에 잡혀있던 '불가피한' 일정이 처리되면, 한국에 머무는 기간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될까? 이에 대한 답변도 썩 개운치 않았다는 게 문제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 질문에 "클럽팀과 대표팀 감독은 다르다"라고 운을 떼면서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월드컵 기술위원회(TS)에서 세계 축구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공부한 것처럼, 세계적인 축구 흐름도 뒤처지지 않도록 지켜보고 경험해야 한다. 우리가 상대할 팀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있고 상대 주요 선수들은 어떤 활약을 하는지 직접 다니며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질문에 대한 확답을 피했다.

물론 '지피지기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꺼낼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아직 ''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됐으니 말이다. "세계 축구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라는 이유도 듣기 좋은 변명일 뿐, 쉬이 납득이 되진 않는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건 월드컵 기술위원회(TS)의 주 업무가 맞다. 하나 세계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 정말 한국 대표팀 감독의 '주 업무'가 맞는지 되묻고 싶다.

파울루 벤투 전임 감독이 팬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건 임기 내내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 역시 '고집이 세다', '플랜 A만 고집한다' 등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벤투 감독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자세로 제 임무에 충실했다. 자신을 비롯하여 동행한 코치진이 한국에 머무르며 수시로 서로 의견을 공유했고, 자신의 철학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 결국 '해피엔딩'을 맞았다.

감독마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성향도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전임 감독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비교를 당하는 현 상황이 클린스만 감독 입장에선 못마땅하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벤투 감독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보여줬는가? 그리고,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진심'을 보여줬는가?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면 어느 것 하나 '그렇다'고 명쾌하게 답할 수가 없다. "한국에 분명 상주할 것"이라고 했다가 162일 만에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라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교묘하게 달라졌던 그의 화법처럼 참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글=유지선 기자(jisun22811@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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