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규제묶인 금융지주 …"빅테크 지분투자만 풀어도 숨통"

채종원 기자(jjong0922@mk.co.kr) 2023. 8.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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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금융지주 경쟁력 비교해보니

◆ 금융지주법 대수술 ◆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회사의 대형·겸업화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2000년 제정됐다. 이후 국내 금융지주들은 양적 성장을 이어왔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국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금융) 총자산은 3000조원에 육박할 정도다. 이들은 올 상반기에만 총 11조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반면 23년간의 양적 성장에 비해 글로벌 경쟁력 관점에서 국내 금융지주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도 할 말이 많다. 각종 규제로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에 놓여 있어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기 어렵다는 불만이다. A금융지주 전략기획팀 책임자는 "현 규정은 순수지주로서 경영 관리만 하라는 것인데 굳이 금융지주 업무를 그렇게 제약할 필요는 없다"며 "금융당국이 지주 역량을 키우기로 했다면 '판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차원에서 전향적인 제도·규제 개혁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23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엔 한때 13개 금융지주(2014년)가 있었고, 현재 10개 금융지주가 있다. 미국에 549개, 일본에 34개 금융지주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다.

한국은 금융지주 내 은행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한국 금융지주는 은행에서 평균 57.1% 수익을 얻고 있는 반면 미국은 기업투자금융(CIB) 45%, 리테일(소매금융) 42%, 자산관리 13%이고, 일본은 CIB 37%, 글로벌 33%, 리테일 27%로 퍼져 있다. 지주사 수익 중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도 한국은 5.6%인 데 반해 미국과 일본은 40%대를 보였다.

한국 금융지주들이 미국, 일본과 비교해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지 못하고 비은행이나 해외 부문 사업에서 성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셈이다.

현재 한국 금융지주사 10개는 약 320개 자회사를 보유 중이다. 반면 미국의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금융지주사들은 각자 보유한 자회사 숫자만 3000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B금융지주 전략기획 책임자는 "금융지주가 자회사나 지분 투자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요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지주가 비금융회사에 폭넓게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법률상 금융지주는 비계열회사 지분을 5% 이내에서 소유할 수 있다. 은행이나 상호저축은행, 보험사가 비계열사 지분을 15%까지 출자할 수 있는 만큼 금융지주도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비계열회사 지분 규제가 금융지주사와 일반지주사를 구분하기 위한 장치인데, 이를 은행이나 보험보다 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금융지주는 중개·주선업, 데이터 처리처럼 금융 관련 업무범위를 수행하는 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다. 또 증권자회사를 통해 벤처기업 주식을 100%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도 투자전문회사를 통해 벤처기업의 주식 취득이 가능하다.

한 국책연구기관 금융전문가는 "금융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비금융회사를 투자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금융지주사 전략 담당 간부는 "허용 지분을 조금만 열어주면 소유하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사업 다각화가 가능하다"며 "세간의 변화 속도에 빠르게 대응하는 핀테크, 빅테크의 DNA만 수혈받을 수 있어도 금융지주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업계에선 '중간금융지주'의 필요성도 거론한다. A금융지주 전략기획팀 책임자는 "예를 들어 지주사 밑에 글로벌 중간지주, 디지털중간지주를 만든다면 영업력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글로벌 중간지주를 만들면 그 밑에 가·나·다 계열사가 있고, 그 아래 또 계열사가 붙는 구조가 될 텐데 지금은 그것 자체가 허용이 안 된다"면서 "이 같은 중간지주사 설립을 저해하는 지분구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국에서 지주와 계열사 간 '칸막이'를 허무는 제도 개선을 내비친 상황에서 허용 범위가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인지도 주목된다.

금융권에선 융·복합 시대에 맞게 고객정보 공유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현재 금융지주법 시행령에 근거해 금융지주는 신용위험 관리와 내부 통제, 고객 분석과 상품·서비스 개발, 성과 관리 등 고객 정보만 제공할 수 있다.

영업을 목적으로 한 정보 공유가 금지돼 있어 고객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복합상품·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해 금융그룹 내 시너지 효과 창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

또 정보 제공에 대한 엄격한 절차, 고객 통지 의무 등으로 그룹 내에서 상호 간에도 정보 공유 자체를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돼 있다.

반면 미국은 사실상 정보 공유에 큰 제약이 없다. 유럽연합(EU)도 고객 동의에 기반한 정보 활용을 허용한다. 일본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지만 이를 거부하는 소비자의 관련 정보를 공유·활용하는 것을 배제하는 '옵트아웃(Opt-out)' 규정을 마련해뒀다.

선진국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정보 공유 규제를 지금보다는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정보 남용보다는 보안 관리 부실 측면이 강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사의 정보 활용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다.

대안으로는 옵트아웃처럼 정보 공유의 남용을 막는 장치를 도입할 수 있다. 또 지주사가 그룹 내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사후 감독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다만 국책연구기관 금융전문가는 "2014년 이후 개인정보 관련 법령이 정보 주체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존중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금융그룹 내 데이터 활용을 단계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보 공유와 함께 금융사의 업무위탁 제도가 어떻게 개편될지도 관심사다.

현재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심사 때 담보가치평가 업무를 부동산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보유한 핀테크에 위탁하고 싶어도 본질적 업무 위탁을 금지한 규제에 막혀 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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