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집주인' 310명, 42억원씩 떼먹었다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3. 8.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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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안갚고 잠적 … 상위 10명에 2370가구 피해
HUG 혈세 투입만 1.3조원
블랙리스트 4개월새 33% 쑥
특별법에도 사각지대 여전
올 9월부터 명단공개 예고

두 자녀를 둔 A씨는 올해 보증금 2억8000만원을 전세사기로 몽땅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 보증금은 A씨가 20대 때부터 결혼 이후까지 매달 200만원씩 악착같이 모아 마련한 전 재산이었고, 20년간 부은 청약저축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중도금을 치를 돈이었다. A씨는 "변호사, 경찰 수사관, 공무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전망만 이야기한다"며 "시행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은 다가구 전세 피해자에겐 소용이 없다"고 탄식했다.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악성 임대인 310명이 떼먹은 전세금이 1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HUG의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는 올해 4월 말 기준 310명으로 연말 대비 4개월 만에 77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HUG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운영하면서 전세금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집주인 중 연락이 끊기거나 최근 1년간 보증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을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로 등록해 관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233명이었는데 4개월 만에 33%가 증가한 것이다.

악성 임대인 대신 HUG가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대위변제액)은 총 1조3081억원이다. 악성 임대인 상위 10명에 대한 대위변제액은 5038억원으로 전체 중 38.5%에 달했고 이들 10명 때문에 2370가구가 피해를 봤다.

특히 최악의 악성 임대인은 377가구의 보증금을 떼먹어 HUG가 820억원을 대신 갚아줬다. 2위 악성 임대인은 410가구의 전세보증금 783억원을 떼먹었다. 3위 임대인은 248가구의 보증금 586억원을 돌려주지 않았고, 4위는 580억원(286가구), 5위는 546억원(233가구)이었다.

국회는 지난 3월 악성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오는 9월부터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가 시행된다. 맹 의원은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법의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조치를 충분히 해나갈 것"이라며 "전세시장 전체의 악성 임대인이 공개되도록 해 전세사기 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전세사기 피해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국회토론회'를 열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전세사기피해고충접수센터는 특별법의 주요 지원책인 '우선매수권'이 구분소유가 불가능한 다가구 주택에는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 취업이나 결혼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특별법으로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없다. 권지웅 민주당 전세사기피해고충접수센터장은 "피해 발생 시기나 피해 발생 후 소유권 양도, 피해 규모 등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며 "피해자로 인정되지 못한 사각지대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토론에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부실채권 처리 전문기관인 캠코가 금융기관 선순위 부실채권을 할인 매입해 경매권 실행만 유보해도 해당 주택의 임차인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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