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접고 인도로 …"영원무역 '전 지구적 투자' 계속된다"
리스크 줄이려 투자처 다변화
국내 의류 OEM 첫 인도 진출
주변국과 14억 내수시장 타깃
우즈베크·케냐에도 투자계획
韓위상 따라 기업 역량도 늘어
세계 무대로 투자안목 키워야
"고객이 나를 믿고 주문해 줬으니 내가 직접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장에 가는 겁니다. '회장님 이제 성공하셨는데 좀 쉬시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쉬면서 기업을 잘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현장을 챙겨야 잘할 수 있습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은 '현장'을 중요시하는 경영자다. 지난 5월 해외 출장을 나가서도 28일간 무려 18개 도시를 돌았다.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어려운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76세인 성 회장은 아직 거뜬하다고 말한다.
그는 "팬데믹 이전에는 1년 365일 중 200여 일을 해외 출장으로 보냈다"며 웃었다. 힘들어도 현장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지난 50년간 기업을 이끌며 깨달은 원칙이자 신념이다.
성 회장은 1971년 가발회사였던 서울통상에 입사하며 섬유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3년 뒤 아웃도어·스포츠 제품 수출 전문기업인 영원무역을 창립했다. 그의 나이 27세 때다. 내년 50주년을 맞는 영원무역그룹은 그사이 연매출 4조5274억원(2022년)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5개 국가의 생산기지에 9만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현재 공장을 짓고 있는 인도가 더해지면 6개 국가에 10만명이 넘는 직원을 두게 된다.
영원무역은 올해 국내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 최초로 인도 투자를 실시했다. 총 1억2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들여 인도 텔랑가나주 와랑갈 '카카티야 메가 텍스타일 파크(Kakatiya Mega Textile Park)'에 12개의 공장을 건설한다. 그가 인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경제는 16일 서울 명동 영원무역 빌딩에서 성 회장을 만났다. 이하는 일문일답.
―영원무역은 6번째 해외 생산기지로 인도를 낙점했다. 계기는 무엇인가.
▷인도 정부가 먼저 우리가 투자해 주기를 바라면서 지난 10년간 러브콜을 보내왔다. 세금이나 금융 지원 등 각종 혜택도 많이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영원무역이 갖고 있는 화학섬유 관련 기술력은 세계 최고다. 인도는 섬유산업이 농업 다음이자 두 번째로 큰 나라이지만 상대적으로 화학섬유 의류 분야에서 경쟁력이 낮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2016년부터 인도 투자를 검토했다. 그러나 인도는 어려운 시장이라 공장 용지를 확정 짓기까지 무려 6년이나 걸렸다. 지금도 여전히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5개 국가에 생산기지가 있는데, 더 늘릴 필요가 있었던 건가.
▷리스크를 줄이려면 투자처를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에 만든 공장이 문을 닫게 돼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했다. 1995년 진출해 500억원을 들여 1만명을 고용했었는데 2018년부터 사실상 폐업 상태다. 문 닫기 직전까지도 3500명의 고용 인원이 있었다. 그들이 다 일자리를 잃었으니 너무나 어리석은 것 아닌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후로 한국 업체에 대한 배척이 여전하고, 중국 정부가 그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중국 투자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영원무역의 무대는 전 세계다. 세계적인 플레이어로서, 전 세계 어디나 대량 생산 혹은 소비가 필요한 곳에 최대한 빨리 납품하겠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시장은 유한하고 생산은 무한하다. 시장이 있는 곳으로 쫓아가야 한다. 인도는 아주 큰 시장이다. 인도의 중산층 이상이 소비하는 가격대가 좀 있는 옷을 우리가 생산하려는 거다. 주변 국가 수출뿐만 아니라 14억명이라는 내수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갔다.
―인도 투자 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
▷2025년까지 총 12개 공장 및 시설 중에서 8개 공장을 먼저 지을 예정이다. 이번 공장 규모로 따지면 우리가 직접 고용하는 현지 인력이 1만2000명쯤 될 거다. 간접고용까지 따지면 5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보통 큰 공장 단지가 들어서면 주변에 식음료, 금융, 운수, 원자재 납품 등 다양한 산업이 파생된다. 공장이 안정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2억~3억달러(약 3000억~4000억원) 정도는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영원무역 전체 생산량 중에 10% 정도를 기대하는 거다. 그렇지만 결국은 해봐야 안다. 경험상 투자는 의도나 목표한 바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다른 국가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 있나.
▷우선은 우즈베키스탄이다. 투자를 하려고 들어간 지는 10년이 됐는데 그 나라의 정세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속도가 안 나다가 요즘 본격화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리적으로 유럽과 우리나라의 딱 중간에 위치해 있다. 유럽 지역과 더불어 지금은 전쟁 때문에 막혀 있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을 개척하려고 투자를 해왔다. 앞으로 더 투자해 대량 생산기지로 삼을 거다.
그다음으로 개척 중인 곳이 케냐다. 아프리카엔 에티오피아에 먼저 투자했는데 내전 등의 문제로 인해 더 진행이 안 돼 케냐로 옮겨 공장을 짓고자 한다. 케냐는 아프리카와 유럽 시장을 보고 들어간 거다. 아시아까지도 일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도 집중 투자를 위해 공장 용지를 사서 공장을 짓고 있다. 방글라데시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가 진출할 시장이 없는 남미와 호주를 제외하고 사실상 '전 지구적'인 투자를 하려 한다.
―어느덧 경영인으로 50년 가까이 살아오셨다. 세상이 변한 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회장님의 경영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의 위상이 현저히 높아진 것을 체감한다. 한국 기업에 대한 기대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 기업의 역량도 그만큼 늘어났다. 영원무역도 마찬가지다. 투자를 할 때도 국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염두에 두고 보게 됐다. 이제 해외 진출이나 투자를 하려는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가 내 무대라는 생각으로 안목을 길러야 한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1947년 서울 출생 △1965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0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4년 영원무역 설립 △1992년~ 영원아웃도어 대표이사 회장 △2008년 금탑산업훈장 △2014~2020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2018~2020년 국제섬유생산자연맹(ITMF) 회장
[김효혜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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