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몰랐는데요…" 존재감 없었던 6년 만의 민방위 대피 훈련
일부 구간은 차량 통제…"택시 4대 놓쳐 약속 늦었다"
텅텅 빈 대피소…"일반 시민이 민방위 하는지 어떻게 알겠나"
행안부 장관 참여한 민방위 훈련도 혼란…대피소 부족
"오늘이 민방위라고요? 몰랐는데요."
23일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수원역 로데오거리에 사이렌이 울렸다. 6년 만에 전 국민이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원칙상 시민들은 대피소 등 안전한 공간에서 최소 15분은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던 시민들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로데오거리에서 만난 전모(49)씨는 "오늘이 민방위인 줄은 몰랐다"면서 "사람들도 다 걸어 다니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하철역 입구에 일부 시민이 서 있었지만, 세차게 내리던 장대비가 약해지자 곧장 움직이는 등 민방위 훈련에 참여한 모습은 아니었다.
수원에서 유동 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수원역 광장에서도 민방위 훈련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수의 시민은 평소처럼 역에서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 다녔다. 김모(31)씨는 "마트에서 사이렌과 통행금지 내용을 방송해 주기는 했다"며 "매번 하는 민방위 훈련이라고 알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처럼 6년 만에 이뤄지는 공습 대비 민방위였지만, 수원역 광장이나 로데오거리에서는 훈련을 통제하는 인력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민방위 훈련으로 불편을 겪기도 했다. 성남에 사는 김모(35)씨는 민방위 훈련으로 차량이 통제돼 약속 시간에 늦었다. 김씨는 "약속이 있어서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는데 '민방위 때문에 15분 동안 움직일 수 없다'며 취소해 달라고 하더라"라며 "그렇게 4대를 놓쳐서 결국 중요한 약속에 늦었다"고 토로했다.
텅텅 빈 대피소…"일반 시민이 민방위 하는지 어떻게 알겠나"
이날 오후 2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민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단지 내 도로를 달리던 택배 차량들도 멈추지 않고 서둘러 배송지로 향했다. 차량을 세워둔 채 물건을 내리고 있던 한 택배기사는 공습경보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폭우를 뚫고 인도를 달리던 한 남성은 대피소가 아닌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 남성은 '공습경보가 울렸는데 대피소로 피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비도 쏟아지고 바쁜데 주야장천 대피소에서 시간을 보낼 순 없지 않냐"면서 "아파트나 대피소나 안전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자리를 떠났다.
대피소로 지정된 지하 1층 주차장에는 차량들만 있을 뿐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경계경보가 발령된 2시 15분은 대피소로 피난한 시민들이 밖으로 나와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단계지만, 대피소를 빠져나오는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주민 황모(48,여)씨는 "몇 년째 민방위 훈련을 하지 않기에 이제는 민방위 훈련이 사라진 줄 알았다"면서 "공무원들이 거리에서 홍보하지 않는 이상 일반 시민이 민방위를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지적했다.
행안부 장관 참여한 민방위 훈련도 혼란…대피소 부족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여한 '접경지역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에서는 일부 시민이 대피하는 과정 등에서 혼란을 겪는 등 훈련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 정각에 맞춰 공습경보가 울리자 동두천시 시민회관으로 인근 주민 50여 명이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대피소에 자리가 부족해 주민 20여 명은 훈련받지 못하고 귀가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습경보가 경계경보로 바뀐 오후 2시 17분에는 아직 훈련 종료까지 3분이 남았지만, 일부 주민이 자리를 떠났다.
대피소에서 방독면 착용과 심폐소생술을 체험한 이 장관은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적의 공습으로부터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도 민방위 훈련에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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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고무성 기자 km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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