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오염수 방류’ 막을 기회 흘려보낸 尹정부의 3개월
5월 정상회담서 ‘시찰단 파견’ 합의…사실상 ‘협조 모드’ 돌입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매일 160톤씩 최소 30년 동안 총 130만 톤. 오는 24일부터 시작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됐다"며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한국 정부의 방조가 낳은 합작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간 오염수 대응에 소극적으로 일관해 온 우리 정부를 향한 국내 비판 여론도 다시금 거세지는 분위기다. 오염수 방류를 막거나 늦출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사실상 정부가 이를 막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오는 24일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직후 우리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과학적·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 다수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줄곧 방류에 사실상 찬성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는 지적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보다,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국내 괴담‧선동' 대응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오염수 저지 골든타임 여러 차례 흘려보낸 정부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한‧일 관계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고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일본에 날을 세우지 않았다. 지난 3월 첫 한‧일 정상회담 당시엔 윤 대통령이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라고 말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양국 간 오염수 방류 합의에 있어 가장 본격적인 기점으로는 3개월 전인 지난 5월7일 두 번째 한·일 정상회담이 꼽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한국 전문가들의 후쿠시마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 민간인들이 제외된 정부 측 전문가들 위주로 시찰단이 꾸려진 데다, 검증이 아닌 시찰에 방점이 찍히면서 국내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정부는 6월 중순부터 국민적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매일 브리핑을 열고 오염수 방류 현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브리핑을 거듭할수록 우리 정부가 방류와 관련해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한계만 드러냈다. 여기에 "방류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 "오염수 방류와 수산물 수입은 다른 문제"라는 등 답변을 거듭하면서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안전하다"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일본의 방류 시계를 한층 재촉했다. 이 당시에도 우리 정부는 "IAEA가 권위 있는 기관이므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나아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과학·기술적 검증 결과를 발표하며 "(일본의 방류 계획이) IAEA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고 힘을 실었다.
여당은 IAEA 보고서 발표를 기점으로 야당과의 오염수 공방에 더욱 고삐를 당겼다. 보고서를 불신하는 야당을 향해 "괴담‧선동으로 국민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이른바 '회 먹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연이어 수산시장 등을 방문해 회를 먹는 모습을 보이며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조차 "국민을 우습게 아는 태도"란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8일 미국에서 성사된 한‧미‧일 정상회의를 사실상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윤 대통령은 "IAEA 점검 결과를 신뢰한다"고 밝히며 미국과 함께 일본의 방류에 힘을 실었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원전 사고 12년 만에 오랜 숙원이었던 오염수 방류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우리 정부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을 이어오면서 오염수 방류에 따른 아무런 외교적‧경제적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방류 결정 직후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화장치 필터를 더 자주 바꿔 달라'는 등 7가지 요구를 일본에 전달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조차 일부는 들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염수 방류가 이미 결정된 이상 이젠 일본에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거나 실익을 취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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