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해석 개헌] ② 권력이 아닌 국민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부 명령인 시행령으로 국회가 만든 법률을 뒤집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이런 현상을 포착해 <헌법 위에 시행령> 연속보도에서 지적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에는 헌법을 마음대로 해석해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행위를 ‘해석 개헌’이라고 보고 위헌성을 점검하는 <윤석열의 해석 개헌>을 연속보도한다. <편집자주>
① 대법관 제청권 무력화, 재판관 선출권 무력화
② 권력이 아닌 국민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누군가가 국가와 헌법을 파괴한다고 거듭 발언하고 있다. 반국가세력, 헌법파괴, 기본권 침해 같은 단어를 쓰면서 국민을 위해 헌법파괴 세력과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발언이 가리키는 대상이 애매하지만 대체로 전임 정부, 야당, 시민단체 등을 일컫는다고 언론은 물론 여당에서도 설명한다. 이 가운데 대상이 특정된 사례도 있는데, “민주노총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난 5월 국무회의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헌법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저 역시 대통령으로서 이를 존중해왔습니다. 그러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까지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민노총(민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들께서 용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2023.5.23)
모든 법에는 규제 대상이 있다. 민법은 계약 상대방을 규제하고, 형법은 범죄자를 처벌한다. 이렇듯 모든 법률은 사람을 규제한다. 오로지 헌법만이 국가를 통제한다. 헌법은 국민의 인권이 무엇인지 밝히고, 이를 권력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선언한다. 유럽에서 근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인권 보장과 권력 통제를 위해 발명한 문서가 헌법이다. 세계 모든 헌법이 권리장전과 국가구조로 이뤄진 것도 같은 이유다. 국가 권력은 헌법에 따라 통제되고, 그렇지 않은 권력은 헌법재판을 받는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존재이기에, 권력 행사를 자제해 헌법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 더러 국민 각자가 기본권을 행사하면서 충돌하기도 하는데, 이때도 국가 권력은 소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 사이의 기본권 충돌을 구실로, 권력에 저항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대통령이 나서 막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식 헌법 해석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권력 자제가 아니라 기본권 행사 개입으로 바꾼 것이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주체를 ‘권력’에서 ‘국민’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1. 집회 시위의 자유 등 기본권을 대통령이 존중하지 않을 수도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헌법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저 역시 대통령으로서 이를 존중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집회나 시위의 자유 같은 기본권은 인권 중에서도 권력의 침해를 막기 위해 헌법이 특별하게 보장하는 인권이다. 그래서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정한 문서인 헌법에 들어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마치 대통령이 존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헌법이 기본권을 보장하지만 실제로 보장할지는 대통령 권한이라고 믿어서다. 이렇게 되면 헌법의 최종 판단자가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통령이 된다.
둘째, 집회 시위의 자유를 축소 가능한 한계선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할 때도 수단은 법률이어야 하고, 헌법재판소가 인정하는 수준에서만 유효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정한 집회시위법의 한계를 무시하는 시행령을 이미 준비해놨다. 집회 시위를 비롯한 국민의 자유 제한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이 아닌 집행 절차에 불과한 대통령 시행령으로 하겠다는 의지였다.
2. 사인(私人)에 불과한 민주노총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나
현대 입헌 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장치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이다. 국민이 권력행위와 권력기관을 상대로 헌법재판을 제기해 기본권 침해를 저지하는 방식이다. 권력행위 제어로는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 행정에 대한 헌법소원이 대표적이다. 권력기관 통제로는 공직자 탄핵, 정당 해산 등이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적한 민주노총을 상대로는 어떠한 헌법재판도 제기할 수 없다. 애초 민주노총 따위의 사인은 헌법을 파괴할 능력이 없어 헌법재판 대상조차 될 수 없어서다.
윤석열 대통령 발언은 사인 사이의 기본권 충돌을 과장한 것이다. 기본권 충돌은 개인이 실현하려는 기본권이 서로 다를 때 생긴다. 저녁에 누군가는 집회에 참여하고 싶고, 누군가는 조용히 쉬고 싶다. 이렇게 기본권이 충돌할 때도 재판으로 해결한다. 근거 법률이 충돌하면 헌법재판으로, 이익이 충돌하면 민사재판으로 한다. 더러 형법을 위반하면 고소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지막 방법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민주노총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고 기소도 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을 형법처럼 다루는 셈이다.
3.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는 권력 자제가 아니라 국민 처벌로 실현되나
헌법은 국가 권력을 통제하는 문서이고, 헌법재판은 국가 권력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헌법수호 의무를 부여한다. 핵심은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헌법재판소 2004헌나1 결정).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또 다른 국가기관인 법원과 국회의 위헌적인 행위를 견제할 수단을 주었다. 위헌적인 법률안을 거부할 권한과 위헌적인 재판을 받은 사람을 사면할 권한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과 사면권을, 정말로 헌법수호를 위해 쓰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국민이 헌법을 통해 권력에 부과한 자제 의무를,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되돌려 지우는 일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와 관련 현대 국가에서는 헌법을 수호하는 최종 장치를 헌법재판으로 보지만, 과거엔 국가원수를 헌법의 수호자로 보는 이론도 있었다. 나치 헌법학자 칼 슈미트 같은 사람이다. 그는 지도자의 결단이 토론보다 우월하다고 했다. '반국가세력과의 투쟁' 같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겹쳐 보인다.
권력은 헌법을 지켜야 하고, 국민은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깨질 때, 헌법재판소마저 권력을 제어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헌법 교과서는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이 직접 헌법을 실현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국가기관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자행되고 그 구제가 불가능할 때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도 기본권의 침해가 구제되지 못하면 이 경우에는 국민이 스스로 저항권을 발동하는 상황으로 돌입하게 된다.
- 헌법학원론 (정종섭, 2018)
이처럼 헌법을 지켜야 하는 주체를 ‘권력’에서 ‘국민’으로 바꾸려는 권력의 시도가 있다면, 이는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국민 저항권의 근거가 된다.
뉴스타파 이범준 seirot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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