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K-99, 상온 초전도체 연구 앞당기는 도화선돼
챗GPT를 밀어내고 LK-99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외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이번 연구에 관한 토론이 치열하게 이어졌고, 초전도체를 주제로 한 밈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초전도체 관련주는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내려 과학계를 넘어 사회 현상으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꿈꿔온 꿈의 물질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흥분을 우선 가라앉히고 상온 초전도체의 존재를 신중하게 검증하고 있다.
7월 22일 한국 연구진이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 2편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LK-99는 이석배·김지훈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팀이 발견한 초전도체 추정 물질이다. LK-99라는 이름에서 LK는 두 연구원의 성에서 각각 따왔으며, 1999년 처음 발견했다고 해 99라는 숫자가 붙었다. LK-99의 강점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납, 구리, 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작은 돌멩이처럼 보이는 LK-99는 구리, 납, 인 등으로 황산화납과 인화구리를 제조해 만들어진다.
저항 제로인 초전도체
일반적으로 물체는 전기를 전도하는 특성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고무나 나무 같은 절연체는 전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전류가 흐르지 못한다. 전기가 흐르는 구리나 은 같은 금속은 전자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전하를 운반할 수 있다. 이러한 도체는 저항이 존재한다. 이 저항 때문에 전자가 움직일 때 에너지를 잃는다.초전도체는 저항이 0인 물체다. 이론적으로 에너지 손실 없이 전류가 무한히 흐를 수 있다. 또 초전도체 내에는 자기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례로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할 때 초전도선으로 만든 커다란 전자석 안에 누워 검사를 받는다. 이때 가열하거나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도 저항 없는 흐름을 통해 매우 강력한 자기장이 생성된다. 초전도체는 무선통신을 위한 주파수 필터를 만드는 것부터 원자 분쇄기의 입자를 가속하는 것까지 무수히 많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상온·상압에서는 초전도체를 만들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체로 많은 금속이 초전도체가 되기 위해서는 영하 100도 이하의 매우 낮은 온도가 필요하다. 아니면 상압의 10만 배 이상인 매우 높은 압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제한으로 초전도체는 값이 비싸고 비실용적이었다. 현재 가장 고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는 영하 23도에서 약 190만 기압의 압력을 받아야 하며,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재료는 온도를 영하 130도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이러한 초전도체는 의료 영상이나 실험 물리학처럼 특수 분야에서만 응용이 가능하다.
만약 상온에서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동안 여러 연구팀이 다양한 물질에서 상온 초전도성을 감지했다고 주장했지만 정밀한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랑가 디아스 미국 뉴욕 로체스터대 물리학자가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으나, 검증 결과 데이터 조작을 의심받으며 철회됐다.
초전도체를 증명하기 위한 조건은 먼저 저항이 0이어야 한다. 전기 저항 0은 전자가 이동하면서 다른 원자들과 충돌이 없다는 뜻이다. 초전도체의 전자는 일반 금속의 전자와 달리 '쿠퍼 쌍'(2개의 금속 내 전자 쌍)으로 팀을 이뤄 마찰 없이 흐를 수 있는 물질 상태인 초유체로 응축된다. 이는 마치 혼잡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단독 전자는 이동 중에 다른 전자나 장애물에 부딪쳐 교통 체증에 갇히지만, 쌍을 이룬 전자는 전용 차선에서 혼잡을 피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초전도성은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가 처음 발견했다. 수은의 전기적 특성을 연구하던 중 온도를 영하 268.8도로 떨어뜨리자 수은의 전기 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후 물리학자들은 수십 년간 연구를 통해 납, 수은, 니오븀, 주석 등 금속들이 절대영도(영하 273.15도)에 가깝게 냉각될 때 초전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낮은 온도에서 전자와 핵의 움직임이 더 조직화돼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처 "초전도 유사 현상"
LK-99가 공개된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검증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온 초전도체 발견이 워낙 어려운 일인 만큼 LK-99에 대한 흥분과 열광 뒤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더 지배적이다. 많은 연구팀이 LK-99를 재현했으나 자석 위에 떠 있는 마이스너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최근 중국 베이징대를 비롯한 일부 연구팀은 LK-99가 마치 초전도체처럼 자석 위로 공중 부양하는 강력한 자성 물질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새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강자성에 의해 LK-99 시료에서 반부양 현상이 나타났으나, 저항이 0으로 떨어지는 초전도성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LK-99가 자석 위 공간에 고정되는 '자기 선속 고정'이라는 초전도체의 특성을 나타낸 점도 철과 다른 많은 물질에서 발생하는 친숙한 효과인 강자성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미국 어배너-섐페인 일리노이대와 미국화학학회 등은 LK-99의 불순물인 황화구리 때문에 초전도성을 띠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황화구리는 약 127도 온도에서 급격한 저항 변화를 나타낸다. 이러한 저항 감소를 LK-99의 초전도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황화구리 불순물의 매우 낮은(0이 아닌) 저항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8월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LK-99가 초전도체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실험 또한 한국 연구팀이 제시한 '초전도 유사 현상'이 LK-99 제조 과정에서 생긴 불순물인 황화구리에 의한 것이라 보고 있다. 불순물과 분리된 순수한 LK-99의 단결정을 재현하자 투명한 보라색 결정이 생성됐으며, 실험 결과 수백만 옴의 저항을 가진 절연체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LK-99가 약간의 강자성 및 반자성을 띠지만 자석 위에 부양되는 특성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기에 초전도체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에서도 LK-99 시료를 제조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상온·상압 초전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초전도저온학회 중심의 LK-99 검증위원회와 서울대, 포스텍, 고려대, 성균관대, 부산대, 한양대, 경희대 등 7개 연구그룹이 LK-99 시료를 제작하고 있다.
대중 관심 이끌어
이처럼 회의적인 결론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검증위원회가 아직 초전도체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초전도체 발견이 노벨상을 넘어 인류에 획기적인 성과를 안길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상온 초전도체는 에너지 생성과 전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 저항 없이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에 환경 문제에서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저항과 발열이 줄어든다면 고효율 컴퓨터칩과 강력한 양자컴퓨터 개발도 가능하다.또 MRI 스캐너, 입자 가속기, 핵융합 반응기, 자기 부상 열차 같은 매우 강력한 전자석을 만드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병원 MRI 촬영에 초전도체가 쓰이지만, 액체 헬륨을 이용한 냉각 작업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 상온에서도 매우 강한 자기장을 생성할 수 있다면 더 저렴하고 접근성 높은 MRI 기술을 실현할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LK-99 사례가 성공적인 개발은 못 되더라도 새롭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온 초전도체 연구를 앞당기는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 LK-99의 등장은 많은 연구실이 시료를 제작하고 검증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으며, 그 관심은 실험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확산됐다. 시네이드 그리핀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물리학자는 '포브스'를 통해 "LK-99에 대한 긍정적 측면은 그것이 초전도체에 대한 대중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라면서 "고등학생들로부터 초전도체 관련 질문 e메일을 받으며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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