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외면하고 오염수 방류 옹호한 지도자들… 끓어오른 민심에 ‘난감’

박용하 기자 2023. 8. 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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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대오 무너진 태평양도서국포럼서
방류 지지한 피지의 라부카 총리 곤욕
일본 정부가 이르면 오는 24일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22일 준비 작업에 착수한 도쿄전력 작업자들이 표본을 채취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저장된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잠재적 피해 지역에선 그간 이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해온 지도자들을 향한 비판이 끓어오르고 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 발표 이후 단일대오가 무너진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선 오염수 반대 민심을 외면한 일부 지도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23일 피지 현지 매체인 ‘피지빌리지’ 등에 따르면 태평양도서국포럼 사무국은 이르면 24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오염수 방류에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류에 영향을 받는 섬나라들로 이뤄진 태평양도서국포럼은 당초 한국·중국 등과 함께 반대 여론의 축을 이루고 있었으나, 방류가 국제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최종보고서 발표 이후에는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오염수 방류 개시가 다가오자, 회원국 내에서는 그간 방류를 지지하거나 묵인해온 일부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앞서 PIF 내에서는 호주와 피지,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 파푸아뉴기니 등이 방류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지빌리지는 방류가 임박한 22일 이들 국가의 지도자를 향해 방류에 대한 입장을 다시 질의했으나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중 피지의 시티베니 라부카 총리의 경우, 방류 지지 성명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최근 적잖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라부카 총리는 지난 4일 기후변화에 관한 태평양 군소도서개발도상국(SIDS) 고위급 대화에서 IAEA 최종보고서를 지지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IAEA 보고서의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며 “조사 결과를 지지하기로 한 결정은 총리로서의 특권”이라 주장했다. 또 “오염수는 피지에서 7300여㎞ 떨어진 일본의 뒷마당으로 방류되는 것이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보였다.

일본의 방류 개시가 임박해오면서 이같은 라부카 총리의 발언은 반발을 키웠다. 마노아 카미카미카 피지 부총리는 언론에 “일본의 말처럼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왜 일본은 그것을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는가”라며 공개적으로 총리와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웃 국가인 투발루의 세베 파이니우 재무경제개발부 장관은 “과학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며 과학적 해석에 관한 라부카 총리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논란이 이어지자 라부카 총리는 최근 태평양도서국포럼의 과거와 현재, 미래 의장국 대표들이 모이는 ‘트로이카’ 회의에서 다른 국가들의 입장을 살피지 않고 한 발 앞서 방류 계획을 지지한 것에 대해 다른 국가들에게 사과를 표명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비정부기구(NGO)들과 다시 협의할 수 있냐고 묻는 언론의 질의에는 “다시 협의할 필요는 없으며, NGO들은 과학자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지의 NGO인 ‘인권연합’(Coalition On Human Rights)은 라부카 총리와 태평양도서국포럼 사무국 등을 향해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려는 일본의 계획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IAEA의 고도로 정치적인 보고서로 인해 일본에 굴복하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국제법적 수단을 행사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인권연합은 오는 25일에는 각계 시민단체들과 함께 피지에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유엔이 이와 관련된 긴급 결의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과 중국, 뉴질랜드, 호주 등 다른 잠재적 피해국들과의 연대도 호소하고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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