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민방공 훈련…텅빈 서울시청 앞 대로의 낯선 풍경에 “신기해요”
오후 2시 공습경보 사이렌 울리자
차량은 갓길로, 시민은 역 안으로
15분 뒤 버스 등 다시 운행 시작
서울시청 앞 도로, 빗속에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일부 시내버스와 차량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내 소방차 행렬이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차량들은 우측으로 즉시 피하세요”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그제야 운전자들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인도 곳곳에 배치된 민방위 통제요원들은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일부 시민들은 “바로 이 앞에 갈 거다”, “급한 일이 있다”라며 통제에 따르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 명동 주민센터에서 파견 나온 한 통제요원은 “6년 만에 처음 하는 훈련이 익숙지 않은 분들도 있는 것 같다”며 “강압적으로 제지할 수는 없고, 협조를 요청할 뿐”이라고 했다.
전국 동시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23일 오후 2시 시작됐다. 2017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지 6년 만이다. 통제에 따르지 않는 모습도 일부 눈에 띄었지만 시민들은 대체로 훈련에 협조적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흥미로워하기도 했다. 도로 갓길에 차를 정차한 장부미(39)씨는 “아이에게 훈련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차량 통제 훈련 구간을 찾아왔다”며 “이 도로가 이렇게 텅 비어있는 걸 최근에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날 서울시청 앞 도로를 포함해 전국 216곳의 구간에서 차량 이동 통제 훈련이 실시됐다. 대구시 북구 대구역 북편 인근 도로에서도 차량 10여 대가 비상등을 켜고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정차한 채 훈련이 종료되기를 기다렸다. 진출입로 곳곳에는 빨간 경광봉을 든 경찰과 공무원들이 배치됐고, 신호등은 점멸 신호로 바뀌었다. 일부 운전자가 통제에 항의했지만 큰 마찰은 벌어지지 않았다.
훈련 상황에서도 지하철은 운행됐다. 그러나 하차한 승객들은 역 내 머물러야 했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서울시청 지하철역 안은 북새통을 이뤘다. 시민 A(78)씨는 “2시10분에 약속을 잡아놨는데 조금 늦게 생겼다”면서도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외국인들도 훈련 상황을 대체로 인지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 토마스 드망주(26)는 “20분간 역 밖으로 못 나가는 상황 아니냐”며 “북한과 마주한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이런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설화명곡역과 2호선 죽전역 지하1층 대합실에서는 지하철 이용객 등 1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상시 대피요령 교육도 이뤄졌다.
주택이나 건물 등에선 대피 훈련도 진행됐다. 대전 동구 가오동의 한 아파트 주민 등 50여명은 경보와 함께 지하 대피소인 아파트 주차장으로 대피했다. 이들은 민방위 훈련이 시작되기 10분 전부터 인근 어린이집 앞에 모여 대피 관련 교육을 받았다. 길을 지나던 초등학생들은 “오늘이 민방위 훈련날이구나”라며 신기해했다.
보다 실제 상황에 가까운 훈련이 실시된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민들과 함께 훈련에 참가했다. 이 장관은 경기도 동두천 시민회관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화생방 방독면 착용과 심폐소생술을 체험하고,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 장관은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적의 공습으로부터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야 한다”고 했다.
15분 뒤 공습 경계경보가 발령되자 전국의 차량 이동 통제 훈련 구간에선 멈춰 섰던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선 시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5분 뒤 경보가 해제됐다. 6년 전과는 달리 사이렌이 아닌 안내방송이 훈련 종료를 알렸다. 서울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와 도로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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