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까? 벌써 집었네…지름신을 깨우는 '진열의 마법'

홍성용 기자(hsygd@mk.co.kr) 2023. 8. 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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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배치·구성까지…대형마트 매대엔 치밀한 계산이 있다
수박 옆엔 밀폐용기가 딱
팬데믹 기간엔 위스키를
겨울엔 코코아 잘 보이게…
마트 자체 프로그램 만들어
고객 데이터 분석해 배열도
고객 시야에 잘 들어오고
팔 뻗으면 쉽게 닿는 높이
100~160cm가 '골든존'

대형마트에서 '상품 진열'은 곧 '매출'이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어느 자리에 진열하는지에 따라 매출이 최대 4배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는 저마다 회사에 맞는 진열 기법과 판매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쏟는다. 결제 데이터에 기반해 점포별 지역 특성에 따라 진열하는 상품 개수를 다르게 하거나, 연관 구매율이 높은 상품끼리 같은 진열대에 나란히 두는 식이다. 주력 신상품은 진열대에서 가장 먼저 손이 닿는 위치인 '골든존'에 배치하기도 한다.

롯데마트는 매장 진열 프로그램 '플래노그램(Plan of Program·POG)'을 통해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2008년부터 POG 시스템을 모든 점포의 상품 진열에 적용해오고 있다. 현재는 상품 카테고리별로 POG를 운영·관리하는 POG팀 직원 10여 명이 전 점포를 통일된 표준 가이드를 통해 운영한다. 평균 가이드로 상품을 진열하면서도 점포 특성에 따라 상권에 맞는 점포별 적정 진열 개수를 수립해 상품을 운영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것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다른 점포에서는 취급하지 않거나, 판매 데이터가 좋지 않아 진열 면적이 작은 상품도 특정 상권 내 특정 점포에서 잘 팔리면 매대에 진열되는 상품 개수(페이싱)를 늘려 더 많은 고객에게 노출시키는 확대 진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POG팀 주요 업무로 '진열 원칙 관리'가 있다. 여름엔 아이스티, 겨울엔 코코아처럼 '시즌 상품'을 계절 변화에 맞춰 매장에 배치하는 것이다. 매장을 찾는 고객이 계절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느낄 수 있도록 계절별 진열안을 만들고, 트렌드와 판매 추이를 수시로 살펴 매출이 늘어나는 상품의 진열 공간을 넓힌다. 팬데믹 기간에는 하향 트렌드를 보였던 세계맥주 진열 매장을 축소하고 매출이 급상승한 와인과 위스키 매장을 확대한 게 대표적 예다.

또 롯데마트는 고객이 구입한 상품 데이터를 분석해 연관 구매율이 높은 상품을 바로 옆자리에 진열한다. 가령 수박 매장 옆에 칼과 수박 보관에 용이한 밀폐 용기를 연관 진열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하이볼 트렌드에 발맞춰 양주 매장에 토닉워터와 레몬즙을 함께 진열하는 것도 같은 예다.

홈플러스도 최적의 진열을 위해 고객 성별과 연령대를 포함해 실제 구매 패턴과 고객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까지 분석한다. 이를 위해 'CDT(Customer Decision Tree) 기법'을 개발했다. 고객이 구매하는 상품의 연관성을 진열에 곧바로 반영하는 것이다. 고객이 최근 1~2년간 어떤 상품을 구매했고, 함께 구입한 상품은 무엇인지, 구매 후에는 어떤 물건을 샀는지 등을 결제시스템(POS)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다.

통상 와인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당도, 원산지, 품종, 보디감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POS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가격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1만원대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2만원대 이상 와인을 구매하지 않지만, 2만원대 제품을 산 고객은 3만~4만원대 제품까지 구매하는 등 고객의 구매 패턴에서 쇼핑 포인트를 찾아내 진열에 적용하는 것이 CDT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진열대 높이는 약 2m다. 상품은 고객이 팔을 뻗어 상품을 집을 수 있는 170㎝까지만 진열한다.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가장 먼저 보는 위치를 '골든존'이라고 부른다. 어깨부터 허리 사이에 위치한 진열대 3~4단이 골든존에 해당한다.

홈플러스 진열대 골든존 높이는 100~160㎝다. 대형마트 주요 고객층인 20~40대 여성의 평균 키(155~160㎝)와 고객 눈높이, 사람이 15도 아래를 보고 걷는다는 점을 모두 고려해 설정된 높이다. 홈플러스는 "미래 핵심 고객층이 될 10·20대 여성 평균키가 4㎝ 정도 커진 만큼 골든존도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골든존에는 주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나 전략 상품인 유통사 자체브랜드(PB) 제품을 먼저 진열한다. 진열대 최상단에는 신상품을 놓아 멀리서도 고객이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롯데마트도 과자 수요가 큰 70여 개 점포의 과자 매장에 자사가 단독 출시한 '브라우니 한국 시리즈'를 골든존에 진열해 신상품에 대한 고객의 접근성을 키웠다. 과거 K뷰티 인기가 높아질 때는 우리나라 브랜드의 탈모케어 샴푸를 골든존에 배치해 이전보다 판매량이 20% 늘어난 사례도 있다.

진열대 좌우에도 상품을 놓는 전략이 숨어 있다. 홈플러스는 진열대 왼쪽에 카테고리 대표 상품이나 가장 저렴한 상품을 둔다. 이는 사람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쇼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왼쪽에 가장 저렴한 상품을 배치해 고객에게 가격 경쟁력이 좋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대형마트에 방문하면 신선한 과일과 채소 코너를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이는 계절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과일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상품에 대한 기대감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배치다. 최근 과일·채소 코너에서는 '진한 맛, 순한 맛, 강한 맛'으로 분류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마트 토마토 매장에는 순한 맛 토마토, 진한 맛 토마토, 강한 맛 토마토로 구분된 토마토를 볼 수 있다.

현재 마트에서는 대추방울토마토, 찰토마토, 완숙토마토 등 기존 인기 토마토를 구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토마주르, 스테비아 토마토, 젤리마토 등 새로운 토마토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마트는 "고객 요구에 맞는 다양한 토마토를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선택권이 많아져 고르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생겼다"며 "이마트의 진한 맛 토마토, 순한 맛 토마토, 강한 맛 토마토 구분은 구색 강화에 따른 단점을 보완하고, 고객이 직관적으로 본인 취향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한 진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완숙토마토와 찰토마토는 순한 맛, 대추방울토마토는 진한 맛이다. 이색적이면서 고당도를 특징으로 하는 젤리마토, 허니토마토, 스테비아토마토 등은 강한 맛이다. 맛뿐만 아니라 각 맛에서 다시 품종별로 상품을 나눈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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