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중단 동물원에 시민들 과일·채소·냉동닭 들고 나섰다
(김해=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23일 낮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 닫힌 문이 열리자 냉동탑차가 들어왔다.
이 냉동탑차는 100㎏이 넘는 냉동 닭 7박스를 내려놓았다.
얼마 뒤에는 과일 도매상에서 신선한 과일·채소 120㎏을 배달했다.
바나나·배·수박·당근·고구마·오이는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로 신선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건초도 부경동물원에 택배로 도착했다.
냉동 닭과 과일, 채소, 건초는 지난 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이 동물원 동물들이 먹을 것들이다.
인적이 끊긴 동물원에 남아 동물들을 돌보던 무표정한 사육사 얼굴에도 웃음기가 번졌다.
이 사육사는 "당도가 낮은 과일은 동물들이 잘 먹지 않고, 원숭이는 던져버리기까지 한다"며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 동물들에게 잘 먹일 수 있을 거 같다"고 반가워했다.
동물 먹이는 전국의 동물 애호가들이 십시일반 보낸 돈으로 동물애호단체가 구매해 부경동물원으로 보낸 것이다.
부경동물원은 동물을 좁고 낡은 시설에서 사육해 '동물복지' 논란을 불러온 사설 동물원이다.
최근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들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삐쩍 마른 채 좁은 실내 시설에서 홀로 지낸 수사자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목이 쏠렸다.
시민들 관심 덕분에 늙은 숫 사자는 사육환경이 더 좋은 충북 청주동물원으로 떠났다.
그러나 동물원 폐쇄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부경동물원은 결국 지난 12일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동물원 대표는 남은 동물은 매각한 후 폐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이 동물원에는 사자, 호랑이, 흑표범, 라쿤, 거북이, 타조 등 30여종 60여마리 정도 동물이 남아 있다.
부경동물원은 코로나19 팬데믹 3년을 거치고, 최근 동물권(지각·감각 능력을 지닌 동물이 고통을 피하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람객이 급감했다.
여기다 낡고 좁은 시설에 다른 폐쇄 여론으로 더욱 운영이 힘들어졌다.
동물원 관계자는 "먹이 대금은 물론, 전기세, 사육사 인건비 등이 많이 밀려있다"고 털어놨다.
최근까지 부경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을 인터넷으로 알렸던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이 이번에는 남은 동물들 살리기에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 14일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부경동물원 운영 중단으로 사료가 급합니다'란 글을 올렸다.
이 단체는 "폐쇄 여론에 부경동물원이 결국 운영을 중단했다"며 "평소에도 재정난으로 제대로 된 먹이를 먹이지 못해 동물들이 야위었는데, 앞으로도 사료 급여가 원활하지 않아 더욱 굶주림에 방치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운영이 중단돼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동물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고 동물원에서도 사료 요청을 해왔다"며 "우리 단체만으로는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어려워 모금을 통해 사료를 보내줄까 한다"고 전했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은 SNS에 후원 계좌를 올렸다.
계좌를 올린 지 10일 만에 전국에서 성금 1천여만원이 답지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부경동물원 한 달 먹이값이 5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며 "성금으로 두 달 정도 동물원에 먹이를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경동물원은 2013년 문을 열었다.
당시는 동물원·수족관 허가와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동물원수족관법이 없을 때였다.
이 동물원은 경남에서 유일한 민간동물원이다.
부산·경남지역 아이들이 딸린 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설이 노후되고, 2020∼2022년 사이 코로나19로 입장객이 급감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해시는 부경동물원이 좁은 면적, 콘크리트 바닥, 감옥형 전시시설 등 동물복지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갈비사자'로 부릴 정도로 마른 채 홀로 지낸 수사자를 구해달라는 여론과 동물원 폐쇄를 요구하는 민원이 김해시청 홈페이지 등에 쇄도했다.
이 수사자가 충북 청주시가 운영하는 청주동물원으로 이사 간 뒤에는 실외 사육장에서 기르던 수사자의 자식인 4살 암사자를 빈 실내 우리에 넣어 기르면서 더욱 여론이 나빠졌다.
sea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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