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감 넘어 무력감” 살상무기 된 호신용품…등록제 목소리도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어
살상력 재평가해 규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헤럴드경제=박지영·김빛나 기자] “등골이 오싹했어요. 너클 같이 살상력이 강한 상품이 호신용품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호신용품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도 저랑 똑같이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이제는 길거리를 걷으며 사람들 손만 쳐다보고 다닙니다.”
잇따른 ‘이상 동기 범죄’가 발생한 이후 온라인에서 3만원짜리 삼단봉을 선물받았다는 이모(24) 씨는 최근 호신용품으로 알려져 있던 너클이 살상무기로 사용됐다는 기사를 보고 공포감이 스쳤다고 한다. 구매하는 사람에 따라 마음만 먹으면 호신용품이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실제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뒷산 등산로에서 30대 남성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너클을 양손에 끼고 여성을 폭행·강간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호신용품인 너클이나 전기충격기, 삼단봉 등이 무기로 악용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불안감을 넘어 무력감을 느끼는 시민이 많아지고 있다. 현행법상 이를 규제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누구나 손쉽게 구매 가능한 호신용품이 범죄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색 몇 번으로 구매 가능한 호신용품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전무하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은 3만볼트 이상의 전기충격기나 총포, 도검, 분사기, 석궁 등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클이나 삼단봉, 호신용 스프레이 등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호주, 캐나다, 영국 등은 금속 너클을 무기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50개주 중 너클 소지 자체가 불법인 주만 22곳에 달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너클로 안면을 가격하면 안와골절뿐 아니라 실명까지도 갈 수 있고, 머리를 가격하면 뇌출혈까지 올 수 있다”며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해외에선 불법 무기로 규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신용품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너클, 삼단봉, 호신용 스프레이 등 호신용으로 나왔지만 목적을 다르게 사용하면 범행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다”며 “구매자등록제 등을 통해 구매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높여 범죄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을 줄이고, 호신용으로 사용되는 제품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호신용품이 방어수단이 아닌 위해수단으로 변질된 사례는 많다. 지난 2021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주머니에 소지하던 최루액 스프레이를 꺼내 들어 상대방 얼굴에 3회 이상 분사하고 스테인레스 재질의 너클로 피해자의 손목을 가격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서울 마포구에서는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전기충격기를 사용해 피해자를 기절시킨 뒤 망치와 식칼로 수십회 찔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충청북도 청주시에서는 30대 여성이 지적장애 3급인 동거남을 삼단봉으로 살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포감을 넘어 무력감을 느끼는 이도 많다. 인터넷에서 전기충격기와 뾰족한 송곳처럼 생긴 쿠보탄, 삼단봉 등을 검색해봤다는 정모(26) 씨는 “나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거면 다른 사람도 다 똑같을 것 아니겠나”라면서 “가해자가 마음을 먹고 호신용품을 무기로 구매하겠다고 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며 회의감이 들어 구매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5만원 상당의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한 조모(26) 씨는 “스프레이를 갖고 있긴 하지만 ‘가해자도 똑같이 호신용품을 가지고 있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엔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며 호신용품의 무력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조씨는 “누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고, 누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자기 방어수단인 호신용품 구매를 막자고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너클 등 공격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측정을 통해 위험성이 입증되면 허가제나 등록제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금속 재질이나 뾰족한 칼이 달린 너클 등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만큼 변화한 환경에 따라 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호신용품 등을 소지하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치안의 근본적인 목표”라며 “너클을 무기에 포함하는 방안과 함께 무기 소지를 적발할 수 있도록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대부분의 호신용품이 목적을 달리해서 사용하면 위협적인 무기로 변할 수 있어 모든 호신용품을 규제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규제를 한다 해도 상황에 따라 호신용품을 상대방에 빼앗길 경우 범죄도구로 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시민이 피해를 막기 위해 지니는 호신용품까지 규제한다면 자신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냐”면서 “호신용품을 범죄도구로 사용한 피의자들을 가중 처벌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모든 호신용품을 규제할 순 없다”고 했다.
경찰 역시 호신용품의 순기능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에서 규제하는 총포나 도검 등은 위험성을 검토해 관리 대상을 정한 것”이라며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서 필요한 사람이 호신용품을 소지하지 못한다거나 너무 성능이 적은 것만 소지가 가능하다면 호신용품으로의 기능을 다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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