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블리자드, '블리즈컨'이 갈림길이다
"인생 최고와 최악의 게임이 같은 회사에서 나올 줄이야"
최근 커뮤니티에 게재된 블리자드 팬의 코멘트가 눈길을 끌었다. 디아블로4 관련 각종 악재 탓에 분노가 차오른 민심을 단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디아블로4를 바라보는 유저의 시선이 차가워지면서 2023 블리즈컨의 어깨가 더욱더 무거워졌다.
인생 게임까진 아니지만 기자에게 블리자드 게임은 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줬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지인들과 블리자드 게임을 함께 즐길 땐 웃음과 행복이 가득했다.
덕분에 블리즈컨도 매번 기대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블리자드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단순히 게임 몇 개가 원인이라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체감상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디아블로 이모탈이 도화선이었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게임은 '디아블로4'였다. 정식 서비스 3개월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 디아블로4에서는 2019년 시네마틱 최초 공개 당시 벅차오른 기대감을 찾기 어렵다. "디아블로4 같이 하자"고 출시 전 지인들과 서로 건넨 약속이 무색해졌다.
물론 디아블로4를 최악의 게임이라고 말하긴 가혹하다. 수십 년 동안 게임이라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작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들과 비교하면 디아블로4는 충분히 수작이다.
하지만 과거 블리자드의 포트폴리오와 비교하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디아블로4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디아블로 이모탈과 결이 다른 게임이다. 외주를 맡기거나 협업하지 않았다. 블리자드의 히든 카드였다. 그래서 디아블로4는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디아블로4가 재미없는 게임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디아블로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고 그동안 갈구했던 디아블로 시리즈 특유의 맛도 꽤나 느껴졌다. 출시 당시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즐길 만큼 재밌었다.
- 디아블로4 첫 모닥불 토크
터닝 포인트는 디아블로4 개발진의 대응이었다. 유저들의 의견이 쏟아지는 채팅창을 보기는커녕 과자를 먹으며 서로 떠들기만 바빴던 첫 라이브 소통 방송을 시작으로 지금껏 디아블로4 개발진이 보여준 행동은 매번 실망스러웠다.
출시 전에는 자신 있게 주장했던, "이게 맞아?"라고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던 자신들의 철학도 팬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철회하고 있다. 그 어떤 게임도 출시 버전에서 완벽할 수 없다. 2023년 출시작 중 극찬을 받고 있는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발더스 게이트3도 파고 들면 부족한 요소가 수두룩하다. 다만 그들은 완벽을 향해, 팬들에게 더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개선한다.
지금껏 디아블로4 관련 여러 개발자 인터뷰에 참여하고 라이브스트림을 시청했다. 서비스 초반과 현재 스탠스가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시 전까지만 해도 편의 기능을 거론하면 개발진은 팬들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벤토리다. 1년 전 CBT부터 거론됐던 인벤토리 피드백을 재차 무시했다. 불만이 누적되자 시즌2에서 일부 개선하겠다고 방향성을 바꿨다. 게임을 직접 즐기면서 불편을 느끼고 이 과정에서 팬들의 의견에 공감해 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너희가 불편하다고 말하니까 고쳐줄게"라는 톤이 강하다.
이 실망감은 지난 12일 공개된 개발자 플레이 영상으로 방점을 찍었다. 해당 영상은 공개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싫어요' 5만 5000개가 넘게 찍힐 정도로 팬들의 공분을 샀다.
영상 속 문제는 간단하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디아블로4의 미흡한 완성도와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다. 다음은 영상 기획 담당자 및 업로드 담당자의 미숙함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출연진이다.
백 번 양보해서 모든 개발자의 게임 실력이 뛰어날 필요는 없다. 솔직히 던전 담당 시니어 디자이너가 출시된 지 2개월이 지난 자사 게임의 구조를 모른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충분히 있을 만한 상황이다.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영상을 공개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보통 공식 채널로 제공되는 콘텐츠는 홍보, 정보 제공, 가이드 등 목적성을 담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는 그 어떤 목적성도 찾기 어렵다.
- 디아블로4 개발자 플레이 스토리
출연진이 디아블로4을 잘 모르니까 숙련된 개발자가 알려주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팬들과 함께 익혀나가는 방식이었다면? 팬들이 예상하지 못한 빌드를 공개하는 자리였다면? 100% 만족스럽진 않아도 이 정도로 비난이 쏟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곧 디아블로4의 미흡한 완성도로 이어진다.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저 영상을 보니까 디아블로4가 왜 이 모양인지 알 수 있겠다"는 코멘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즌1이 팬들의 만족감을 제대로 충족시켰다면 댓글 사용을 차단할 정도로 많은 비난이 쏟아졌을까. 영상도 문제지만 디아블로4 완성도가 근원이라는 의미다.
영상 공개 전 디아블로4 민심은 골드, 아이템 복사를 포함한 다양한 버그 현상으로 최악이었다.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저런 영상을 올렸다는 것은 팬들의 민심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가 디아블로4를 블리자드 게임 중 최악으로 지목한 이유다.
11월 3일과 4일 개최되는 2023 블리즈컨이 블리자드 미래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023 블리즈컨은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되는 뜻깊은 행사다. 스타크래프트3가 공개된다는 루머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면 팬들이 예상하지 못한 신작을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기대감이 없진 않다. 다만 그 기대감이 과거와는 다르다. 블리즈컨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은 설렘이 들지 않는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한다. 기대한다고 손해볼 일도 없으니 긍정적으로 기다리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조 셸리 블리자드 디아블로4 게임 디렉터는 "디아블로4 시즌은 시즌2가 진짜 시작이다"고 말했다. 디아블로4 시즌2와 2023 블리즈컨 일정은 2주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2023 블리즈컨이 사막처럼 메마른 팬심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까. 늘 기대감이라는 단비를 내려주던 블리자드를 다시 만나고 싶다.
moon@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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