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땐 짜릿? 고소땐 애걸복걸…악플러는 가정파괴범, 장난에 ‘인생폭망’
악플러 검거건수, 지난해 1만8000건
장난삼아 썼다가 전과자 되는 사례도
나를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여기면 세상을 지탱해온 도덕관념이 무너질 때가 많다.
영화 ‘할루우 맨(투명인간)’, ‘눈 먼 자들의 도시’, ‘올빼미’에서도 자신이나 상대방이 보였으면 하지 않았을 범죄 행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된다.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깜깜한 밤중에, 인적 드문 곳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된 ‘살인예고 글’은 물론 악성댓글(악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상대방이 모를 것이라 여기며 유명인과 공인, 기업과 기업인은 물론 불특정 일반인을 향해 익명의 칼을 휘두른다. 상대방은 죽을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기에 짜릿한 장난이라 치부한다.
장난삼아 썼다는 글은 사람을 죽이고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단란했던 가정을 파괴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범죄 신고건수는 2만9258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7년 1만3348건과 비교하면 5년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검거 건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범죄 검거건수는 1만8242건이다. 2017년 9756건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포털과 소셜미디어(SNS) 발전으로 다양한 플랫폼 활용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의 권리의식을 정립한 효과다.
더 나아가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범죄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면서 관련 고소나 고발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법상 악플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돼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댓글 내용이 허위사실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과거 유명인의 문제로 한정됐던 악플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점차 일반인, 나아가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 등으로 그 타깃을 넓혀가자 피해자들은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온라인 법률상담 사이트에는 기업을 상대로 한 악성 댓글 및 허위 리뷰 관련 고소 문의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 A씨는 “채용 면접에 참여했던 면접자가 회사와 직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리뷰를 남겨 변호사 상담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는 “소규모 기업들은 만성적 구인난에 고통받는데 허위 리뷰나 악의적 댓글로 인력 충원이 더 어려워질까 걱정”이라며 고소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중인 B씨는 기업 리뷰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자신을 “업무시간에 주식 거래나 하는 XXX 사장”이라 칭하는 악플 작성자를 고소했다.
그는 “태어나 주식 계좌 한 번 개설해본 적 없는데 거짓 댓글로 회사 이미지가 훼손될까 싶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고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개인 블로그를 운영 중인 C씨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성희롱성 악성 댓글이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 끝에 고소했다.
해당 댓글 작성자는 “비공개 댓글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어 공연성 부족으로 처벌이 어려울 것”이며 C씨를 힐난했다.
C씨가 고소를 강행하자 결국 고소 취하를 애원하며 반성문을 수차례 써내고 합의금을 제시한 끝에 간신히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악플러에게 중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21년 유명 인터넷 강의 업체인 D기업 대표가 댓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경쟁 업체를 상대로 5년간 20만건에 달하는 악성 댓글을 작성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 기업은 D기업이 작성한 악성 댓글로 수익 감소 등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3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9억원을 배상받았다.
D기업 대표와 임원을 상대로 추가적인 형사고발이 이어지며 해당 대표와 임원이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와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온라인 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타인을 모욕하고 공격한 대가로 고소나 고발을 당해 법적 절차를 밟게 되면 실형까지도 이어진다.
유죄가 확정돼 벌금형 등이 선고되면 ‘전과자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한들 경찰조사, 검찰조사, 판결 등의 사법 절차를 거치며 가해자의 심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법조계 전문가는 “악성 댓글에 대한 고소, 고발, 검거 사례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단호한 법적 대응이 늘어가고 있다”며 “온라인상에 무심코 남긴 악성 댓글로 송사에 휘말리거나 졸지에 전과자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악성 댓글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처벌이 더 손쉽게 이뤄지도록 처벌 구성요건을 완화해 악성 댓글을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용자 아이디 확인이 가능한 인터넷 준실명제나 고액의 배상금을 부과해 유사 범죄 반복을 막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의 장치로 악성 댓글 작성 시도를 원천 차단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특정 다수인 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 어렵고 악성 댓글 관련자 처벌이 적잖은 경우 벌금형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0월 국회에서는 온라인 사용자 식별 수단인 아이디나 아이피(IP) 주소를 공개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2021년에는 고의적 허위나 불법 정보를 작성한 사람에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적 규제 강화와 더불어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의 책임 또한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내 한 포털 사이트는 지난 6월부터 악성 댓글을 작성하는 이용자에 대한 제재 규정을 신설해 욕설이나 비속어 등 악성 댓글을 남긴 전력이 있는 이용자의 댓글 사용을 중지시키고 프로필에 이용이 제한되었음을 알리는 문구를 표시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는 “악플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단호한 법적 대응과 처벌 사례가 늘어가고 있어 다행”이라며 “인터넷 준실명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악성 댓글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도입해 불필요한 사회적 손실을 하루빨리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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