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핑계'로 새만금 죽인자들, 다시 살려내라[특별기고]

문규현 신부 2023. 8. 23. 15: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규현 신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실패를 두고 정치권이 뜨겁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탓을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 민주당 탓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묻고 싶습니다. 시민사회단체가 매립지에서 4만여명의 인파가 모여 잼버리를 개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때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단언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잼버리를 핑계로 원형 갯벌로 남아 있던 해창갯벌을 매립하고 도로를 건설하고 새만금 신공항의 조속한 추진을 말해 온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또 노태우 정부 이래 선거철만 되면 전라북도를 위한 공약이라며 새만금을 두고 수많은 계획을 발표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역대 정부는 한목소리로 새만금 간척사업을 칭송하고 수없이 개발계획을 바꿔가며 새만금을 이용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에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권은 책임 돌리기에 급급해하고 있어 한탄이 절로 나옵니다. 경쟁과 개발이라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말하는 한국 사회는 33㎞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갯벌에 사는 뭇 생명의 숨통인 바닷물을 가로막는 ‘죽음의 방조제’였습니다. 정부가 나서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는 사업이라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를 가로막고 풍요롭던 생태계를 파괴하며, 결국에는 그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 위험한 발상일 뿐이었습니다.

호남의 지평선에 크고 작은 섬처럼 놓였던 석산들이 바다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2006년 새만금 사업 취소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공사의 진척도나 투입된 공사비를 고려할 때 사업을 취소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공사를 중단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새만금 사업은 진행 중이고, 그 끝이 어찌될지 알 수 없습니다. 목표도 목적도 없이 매립을 위한 매립, 개발을 위한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무책임한 개발의 욕망이 불러온 새만금 잼버리는 목적을 상실한 채 수많은 생명을 말살하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새만금 사업의 과거와 현재, 실패의 미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제6호 태풍 ‘카눈’의 북상을 앞두고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에 대한 비상대피계획이 결정된 지난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지 인근 수로에 물이 고여 있다. 부안|조태형 기자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를 막아 조성된 새만금 방조제 내측 새만금호는 혈세 4조원을 쓰며 수질 정화를 한다고 했지만 속절없이 썩어갔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매립된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은 사람들을 덮쳤습니다. 2020년 12월, 다시 야간에도 수문을 열자 수라갯벌에 바닷물이 들었고, 하얀 조개 무덤을 만들던 갯벌에는 일부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망망한 황무지처럼 보였던 갯벌이 예전의 갯벌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남아 있는 갯벌을 살리려면 수문을 상시 개방해 해수 유통을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명이 다시 찾아드는 수라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다니, 자연이 보여준 생명력에 또다시 죽음을 안겨줘야 하는 일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밖에는 안 되는 것인가! 비탄의 한숨이 나옵니다.

올해로 딱 20년 전 저는 새만금 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며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와 함께 부안 해창갯벌을 출발해 서울까지 65일간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했습니다. 아스팔트를 기어가는 자벌레가 돼 소리 없이 울부짖는 생명들의 외침에 화답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삼보일배의 파도가 돼 고행의 길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파도처럼 땅에 엎드린 사람들의 용기와 연대는 방조제가 완공된 뒤에도 새만금을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시 한번 변화의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잼버리 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정쟁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새만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해수 유통과 매립중단, 갯벌의 복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새만금을 이용해 미래로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한 계획을 당장 중단하십시오. 저는 지난 시간 그래왔듯 앞으로도 새만금에 자리한 뭇 생명과 함께할 것입니다.

문규현 신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