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법 제정 4년 반, 지원은 ‘0건’

강은 기자 2023. 8. 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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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대표성 문제” 이유
총 7건 신청에 “지원불가”
추모사업도 “부적합” 판단
‘가습기살균제 간질성 폐질환 피해유족과 피해자 모임’의 김미란 대표가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독자 제공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의 사업을 지원하도록 한 법을 만들어놓고도 4년 반이 지나도록 추모사업을 포함해 단 한 건도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에 근거가 명시된 추모사업조차 지원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의지 부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31일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역학조사를 발표한 지 12년째 되는 날이다.

23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사업의 지원신청 의결 내용’ 문서를 보면, 지난달 말까지 총 7건의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시행령 제14조의2(2019년 2월 신설)는 피해자단체가 추모사업, 조사·연구사업, 그 밖에 피해자 이해를 대변하는 사업을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단체 대표성 문제” “추진 불확실” “대상·용도 불분명” 등 이유로 7건 모두에 대해 ‘지원불가’ 통보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13일 ‘가습기살균제 간질성 폐질환 피해유족과 피해자 모임’ 단체는 희생자 추모회 진행 용도로 100여만의 지원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단체의) 대표성 인정이 어렵고, 사업 내용이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해당 단체가 환경부에 제출한 신청서에는 공간 대여, 식사, 근조화환 구매에 필요한 금액이 예산 항목으로 담겨 있다.

심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앞선 단체는 2021년 7월에도 10주기 추모사업에 필요한 예산 500여만원을 신청했는데, 신청서에 적시된 행사 일자인 8월31일이 훌쩍 지난 9월17일에서야 구제자금운용위원회 심의가 진행됐다. 그리고는 ‘코로나19 방역조치’를 이유로 지원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뒤늦게 자료보완을 요구했는데, 이미 행사 날짜가 지나 단체가 응하지 않자 “보완요청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지원하지 않는다”고 재통보했다.

제10차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구제자금운용위원회 결과. 환경부는 지난 3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가 추모회 진행 목적으로 지원신청을 낸 것에 대해 “사업의 지원대상과 용도가 불분명하거나 사업 추진 주체의 대표성 인정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독자 제공

이 단체의 김미란 대표는 “국가 차원에서 추모를 진행하라는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개별 단체 지원조차 거부하면 대체 어떻게 추모를 하라는 거냐”며 “마치 본인들은 지원하고 싶은데 피해자단체가 응하지 않아 지원을 못 하는 것처럼 책임을 떠넘겼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해 6월 3년6개월의 조사활동을 마치며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추모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추모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민·관 협의체와 같은 추모 추진체를 구성하게 바란다”고 권고한 바 있다.

환경부는 사업자 처벌 촉구 운동(2021년 4월1일), 피해 아동 격려금 모금사업(2023년 3월13일), 사무실 임대(2020년 4월9일) 등을 위한 자금지원 신청도 모두 거부했다. 기업 처벌 촉구 사업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종합포털, 네이버 밴드 등 기존 소통창구 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모금사업 및 임대료 지원은 “지원 대상 및 용도가 불분명” “추진 가능성이 불확실한 사업” 등 사유로 지원하지 않았다.

피해자단체 지원금을 심의하는 구제자금운용위원회는 환경부 공무원과 의료인·법조인 등 전문가로 구성된다. 현재 피해자단체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추천한 인사가 각 2명씩 포함돼 있다. 회의 참석 경험이 있는 A위원은 “지원 요건을 충족한 신청에 대해서도 부결되는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자금을 내는 주체가 기업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업 눈치를 보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신청서에 담긴 사업 계획이 명료하지 않고 부실해서 지원이 어려웠던 것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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