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Y] '류-류 형제' 잇는 '엄-엄 형제'...영화계는 든든하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과 조나단 놀란,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리들리 스콧과 故 토니 스콧 등은 할리우드 대표 형제 영화인이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형제 영화인이 있다.
대표주자는 감독 류승완과 배우 류승범이다. 두 사람은 자타공인 충무로를 대표하는 형제 영화인으로 각각 연출과 연기에서 일가를 이뤘다. 2000년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해 '코리안 르네상스'를 이끈 두 사람은 2010년대 2020년대에도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신들만의 색깔을 공고히 했다.
형제 영화인의 명맥이 뜸했던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형제 영화인이 있다. 감독 엄태화와 배우 엄태구 형제다. 두 사람은 시작을 함께 했으나 조금 다른 속도로 각자의 길을 걸었고, 2023년 마침내 균형을 맞췄다.
2012년 미장센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단편 영화 '숲'(필람 단편!)에서 두 사람은 연출과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후 엄태화 감독은 장편 데뷔작 '잉투기'(2013)에도 자신의 동생을 주연으로 기용했다. '잉투기'는 1만 8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지만 그 해 가장 에너지 넘치는 영화로 두 사람의 재능을 알리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2016)으로 상업 영화에 데뷔했다. 이 작품에도 엄태구가 짧은 분량이지만 등장한다. 그러나 '가려진 시간'은 엄태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연출과 대본에서 아쉬움을 드러냈고, 51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이후 속도는 배우인 엄태구가 조금 빨랐다. 독보적인 개성으로 스크린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혀갔다. '차이나타운'(2015), '밀정'(2016), '택시운전사'(2017), 단편 '시시콜콜한 이야기'(2017), '어른도감'(2018), '안시성'(2018), '판소리복서'(2019), '낙원의 밤'(2019) 등에 출연하며 장르와 분량에 상관없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엄태구는 진한 마스크와 한 번 들으면 잊히기 힘든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대체 불가능한 개성에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까지 더해져 감독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 이후 절치부심해 7년 만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내놓았다. 웹툰 원작이 있지만 자신만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부여해 매력적인 블랙 코미디이자 사회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개봉 3주 만에 전국 관객 290만 명을 돌파했고 , 손익분기점(약 400만 명)을 향해 순항 중이다.
이 작품에도 엄태구는 등장한다. 폐허가 된 서울 바닥을 떠돌며 황궁아파트에 대한 괴소문을 언급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의상과 외모는 마치 '가려진 시간' 속 '태식'과 흡사하다.
엄태화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황궁 아파트 밖에서 주민들을 보는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뮤지컬 같은 연출을 구사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느낌을 주면 안 되니까 외부에서 살아남는 노숙자 같은 인물이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해주는 설정을 넣은 거다. 그런 장치적인 역할을 누가 가장 잘할까 생각했을 때 존재감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엄태구 배우가 목소리가 되게 특이하지 않나. 관객들이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한 번 더 등장 할때도 앞에 한 번 나왔던 인물이라 묘한 텐션이 생길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는 엄태구를 비롯해 모두 감독의 전작인 '잉투기'에 나왔던 배우(김준배, 정영기, 오희준)들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가려진 시간'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이효제가 금애(김선영)의 아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엄태화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 자신의 전작을 애정한 관객들에게 보너스 같은 순간을 삽입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엄태화 감독은 엄태구의 캐스팅에 대해 '혈연' 아닌 '실력'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 캐스팅했고, 그에 따른 출연료도 지급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협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실력 있는 감독과 재능 있는 배우의 만남은 자석의 N극과 S극 같은 결합이다. 그저 인재가 고픈 충무로에서 같은 피를 나눠가진 두 사람이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는 이 모습이 든든하고 뿌듯할 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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